【Kakaotalk 2026/07/23】
부처님과 解悟主義
들어가는 말
이번 講義 主題는 釋尊, 즉 釋迦牟尼 부처님과 ‘解悟主義’입니다. 題目 은 ‘부처님의 解悟主義’이든 ‘釋尊과 解悟主義’이든 어떻게 붙여도 좋습니다.
그러면 이 講義에서 내가 世上 佛弟子들 乃至 世上 사람들에게 傳達하고자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菩提樹下에서 깨달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깨달으셨는가, 깨달으신 다음에 世上 에 佛法을 傳達하는 核心 方便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結論을 要約 하면, 부처님의 깨달음의 內容은 緣起法이요, 깨달은 方法은 八正道 2번인 思惟이며, 佛法을 전하는 核心方便도 思惟입니다. 곧,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세 구동축인 知情意 中 知性축의 움직임이 思惟입니다. 知性 혹은 理性 이 思惟하여, 온갖 理致를 다 理解 하고 깨닫고 하는 것이 사람의 現實인데, 부처님은 이 知性 축의 움직임인 思惟를 지극히 重視하셨습니다. 바로 ‘解悟主義’의 據點이 여기에 있습니다.
解悟主義란 理解를 통해서 깨달음에 이른다는 立場 을 말합니다. 곧, 부처님께서 菩提樹下에서 眞理(緣起 의 理致)를 깨달으셨던 方便은 理性 , 知性이 思惟思索을 함으로써 解脫의 理致인 緣起法을 理解 (깨달음)하셨다는 것이 나의 觀點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神秘한 무엇을 통해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그냥 平凡하게 누구에게나 있는 知性 혹은 理性으로 思惟 곧 思索을 해서 解脫을 決定하는 理致(緣起法)를 理解하셨다는 것입니다. 곧 解悟主義 立場입니다. 그러나 理致를 思惟해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解悟主義 立場 으로 생각하는 佛敎人은 極히 드물고, 깊은 三昧를 통해서 어느 날 문득 무엇인가가 뻥 뚫리면서 깨달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證悟主義 立場이 絕對多數의 많은 佛敎 專門家들의 立場일 것입니다. 나도 한 歲月 을 證悟主義 立場으로 修行 해 왔습니다.
그러나, 하루 8時間 乃至 12時間을 方席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는 三昧 修行을 90日間 하는 것을 1 安居라 하고, 每年 여름 安居, 겨울 安居, 두 安居를 갖습니다. 나의 境遇, 大衆 禪房 安居, 土窟 禪房 安居, 스승님 모시고 하는 別時禪 安居 등을 20回 以上 方席에 앉아 三昧 修行을 한 셈입니다. 時間으로 計算 하면 8×90×20=14400, 14400 時間 以上 을 三昧하는 修行에 바친 셈입니다. 그 많은 時間을 三昧에 바쳐 얻은 結果가 무엇일 것 같습니까?
마음이 좀 가라앉혀지는 狀態에서 마음이 고요해지고 氣分이 좋은 幸福感 같은 것은 문득문득 느꼈지만 원하는 宿命通 같은 道通 은 얻어낼 수 없었습니다. 내 參禪 修行의 目的은 宿命通을 한 다음 大倫理書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經典 말씀으로는 三昧가 깊어지면 過去 500生까지도 記憶되는 법이라고 하는데, 나는 단 한 生 의 過去도 記憶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佛敎 敎理 공부를 해 들어가면서 점점 三昧 가 修行의 本論的인 길이 아님을 認識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生涯 공부를 해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싯다르타 太子는 사람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生老病死가 悲劇的으로 싫었습니다. 늙고 병들고 죽어버리는 것이 人生인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人生을 氣分 좋게 幸福하다고 살 수가 있겠어요? 싯다르타 太子 에게는 人生 全部가 죽음이라는 事件 으로 인해 完全히 無意味로 돌아가버린다고 하는 그 虛無感이 問題였던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不安 이라기보다는 人間의 絕對 限界 에 대한 嫌惡感이었습니다. 이 絕對限界 問題를 解決하기 위해서 어찌해야 할 것인가 할 때, 一旦 고요한 마음으로 瞑想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一次的 인 답이었습니다. 그러니 迦毗羅國의 王子로서 아버님 淨飯王의 대를 이어서 王 노릇을 한다는 것은 길이 전혀 아니었지요. 물론 王 의 길이냐, 瞑想의 길이냐를 놓고 眞摯하고 熾烈한 苦悶의 時間을 가졌을 것임은 當然합니다. 싯다르타 太子는 結局 瞑想의 길을 밟기 위해 出家를 斷行했습니다. 出家 나이는 29歲였습니다. 산으로 갔습니다. 싯다르타는 혼자 조용한 그늘 아래에 앉아서 혼자 瞑想하는 時間들을 갖기도 했을 것입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얻어낸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結局 瞑想 스승들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于先 여기까지를 살펴볼 때 싯다르타 太子의 마음속에 꾸준히 흐르고 있는 核心되는 作爲가 思惟라는 것을 看過해서는 안됩니다. 思惟, 思惟, 思惟입니다. 思惟, 思索은 곧 생각입니다. ‘나는 죽게 되어있단 말이야.’라고 생각을 하고, ‘나는 죽기 싫어. 나는 人間이 가지고 있는 絕對的인 限界가 眞正 싫단 말이야.’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을 克服할 수 있는 무엇인가 길을 찾아야 된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꾸준히 싯다르타의 마음 속에서 그 知性은 꾸준하게 생각(思惟)을 한 것입니다. ‘알라라칼라마, 웃다카라마풋다라는 스승이 있다고 하니 그 스승들을 찾아가자!’하고 생각(思惟)을 했습니다.
먼저 알라라칼라마라는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그 스승 밑에 가서 스승이 가르쳐 준 대로 瞑想을 합니다. 그 스승은 無所有處定이라는 境地에까지 올라가 있는 瞑想 스승이었습니다. 싯다르타는 얼마 되지 않아 無所有處定에 이르러 버립니다. 스승은 感動하면서, “이제 자네는 내 境地에 이르렀으니, 앞으로 내가 죽으면 자네가 이 敎團을 이어받아서 運營하시게.”라고 認可 하였습니다. 싯다르타 修行者는 一抹의 기쁨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失望을 금치 못했습니다. 싯다르타가 원하는 것은 오직 人間 모두의 絕對限界 인 生老病死를 벗어나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마음만 고요하게 無所有處定 까지 이르렀을 뿐이지 生老病死의 解脫 과는 全혀 無關한 것이었습니다. 알라라칼라마 스승을 떠나, 웃다카라마풋다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그분은 非想非非想處定의 境地에 이르신 분이셨습니다. 無所有處定보다 한 段階 더 높은 境地 가 非想非非想處定이라는 境地라고 합니다. 싯다르타 修行者는 이미 無所有處定까지 올라온 狀態 였으니 길지 않은 時間에 非想非非想處定에 이르렀습니다. 웃다카라마풋다 스승도, “놀랍고 놀랍네, 이렇게 짧은 時間에 내가 이르러있는 境地에 이르다니, 이제 내가 죽은 다음에는 자네가 이 敎團을 運營하게!”라고 認定 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싯다르타 修行者는 역시 당신의 瞑想 目的인 生老病死 解脫 과는 無關한지라, 失望하고 웃다카라마풋다 스승을 作別 하고 떠났습니다. 이렇게 修定主義 文化와 作別을 고합니다. 當時 인도에서의 支配的인 修行文化는 修定主義와 苦行主義 였습니다. 싯다르타 沙門은 이제 自然스럽게 苦行主義 瞑想村을 노크했습니다. 佛敎文化에 六年苦行이라는 굳어진 槪念은 바로 이때 形成 됩니다. 싯다르타 沙門은 熾烈한 極端 의 六年苦行을 修行합니다. 一麻一米라, 하루에 삼씨 한 알, 쌀 한 알만을 먹고 버티어내는 苦行입니다. 5년이 넘는 歲月 을 苦行을 하고 나니, 몸은 皮骨이 맞닿아(相接)져 버리고, 氣力은 하염없이 떨어져 버리며, 精神은 昏迷해져 버렸다. 싯다르타 沙門은 또 생각했다. ‘苦行도 깨달음의 길이 아니다. 몸에 氣力이 떨어지고, 精神이 昏迷해진다는 것은 修行의 길이 아니다. 몸에 氣力을 찾아야 한다. 于先 沐浴부터하자!’ 이렇게 생각하고 尼連禪河(네란자라강) 강으로 갔습니다. 沐浴하시다가 쓰러져 버렸다. 쓰러져있는 싯다르타 沙門을 發見한 사람은 양치기 소녀, 수자타였습니다. 수자타로부터 乳米粥을 供養 받으면서 싯다르타 沙門은 점점 氣力을 回復합니다. 修定主義가 됐든, 苦行主義가 됐든 싯다르타 沙門의 所望 인 生老病死 解脫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29歲에 出家한 싯다르타 沙門은 6년 동안에 修定主義 修行村에서 깊은 三昧를 體驗하고, 苦行主義 文化의 苦行林에서 極端의 苦行을 經驗 했습니다. 이제 35歲가 되었습니다. 35歲의 싯다르타 沙門은 ‘이제 스스로를 스승 삼을 수밖에 없구나!’하고 생각하면서 菩提樹下 에 座定합니다. 座定한 다음 天地神明에게 誓約합니다. [不成正覺不起此座 (正覺을 이루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가 그 誓約 입니다. 이 誓約의 뜻은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죽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菩提樹下에 座定한 싯다르타 沙門은 大覺을 얻어냅니다. 大覺 內容은 緣起法입니다. 이 大目에서 궁금한 것은 그 緣起法 은 어떻게, 무슨 方便으로 깨달아졌을까 하는 것입니다. 經典 어디에도 이 궁금증을 解決해 주는 말씀은 없는 것 같습니다. 새벽 별이 빛나는 것을 보고 緣起法 을 깨달았다 식의 이야기는 있지만 緣起法이라는 果가 나올 수 있는 因 構造는 經典에서 發見이 되지 않았습니다. 三昧와 苦行은 이미 답지가 아닙니다. 답지는 무엇일까요? 全州에 있는 華嚴佛敎大學에서 10년 정도 부처님의 生涯와 思想을 講義할 때, 2~3년간 話頭가 되어 戰戰兢兢하면서 探索했던 主題가 부처님의 大覺緣起였습니다. 즉 부처님의 大覺 內容은 緣起法인데 緣起 의 理致를 깨닫게 해준 原因이 무엇이냐 하는 問題입니다. 禪定과 苦行은 이미 아닌 것으로 判明되어 있으니 그것 말고 어디에 답지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히 千辛萬苦 끝에 얻어낸 답지는 일본 佛敎學者, 増谷文雄님의 [부처님 生涯와 思想]이라는 책에서 답의 힌트를 發見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답을 公開합니다. 답은 思惟(思索, 생각)입니다.
* 思惟 事例 1: 부처님의 大覺
부처님의 大覺은 싯다르타 沙門의 마음 속 理性 (知性)이 思惟를 통해 世上 의 存在 理致를 緣起라고 理解했던 것입니다. 곧 緣起 理解가 大覺의 內容인 것입니다. 八正道의 1, 2번인 正見과 正思惟를 옷깃을 여미고 注目 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佛敎 專門家들이 荒唐해 하시겠지만 본 講義者, 龍陀는 목숨을 걸 만큼한 信念으로 主張하고 있습니다. 이 大目 때문에 華嚴佛敎大學 講義를 要請해 주셨던 道法스님과 増谷文雄님을 나의 恩人目錄 에 登載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大覺 內容인 緣起法은 思惟(思索, 생각)로부터 나왔다고 했습니다. 緣起法 은 解脫의 어머니요, 慈悲의 어머니입니다. 解脫母, 慈悲母가 緣起法입니다. 緣起 이므로 無我요, 無我이므로 解脫 이며, 緣起이므로 同體요 同體이므로 同體大悲라는 圖式이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좌우지간 싯다르타 沙門은 思惟를 통해 緣起 의 理致를 깨닫고, 思惟를 통해 緣起無我解脫, 緣起同體大悲 등의 깨달음 體系 를 定立해냄으로써 붓다가 되고 붓다 宣言을 하기에 이릅니다.
* 思惟 事例 2: 四聖諦 -十二緣起-八正道 編輯
이처럼 붓다가 된 부처님은 당신의 解脫法을 世上에 전하리라 決心을 하고, 맨 먼저, 苦行林에서 苦行을 放棄 하고 飮食을 먹게 된 싯다르타 沙門에게 失望하고 鹿野苑으로 떠나버린 驕陳如를 비롯한 五比丘에게 法을 전하리라 마음먹고, 五比丘 에게 전할 教材를 編輯하셨습니다. 바로 思惟를 통해 四聖諦, 十二緣起, 八正道를 編輯한 것입니다.
* 思惟事例 3: 五比丘의 思惟
五比丘는 부처님의 說法을 들으면서 四聖諦 , 十二緣起, 八正道의 뜻을 思惟하여 理解했습니다. 나아가 緣起의 理致 說法을 들으면서 緣起의 理致를 思惟하여 그 뜻을 理解(깨달음)함으로써 阿羅漢 果를 成就한 것입니다.
* 思惟事例 4: 野舍 等 54人의 思惟
五比丘 다음에 野舍라는 마을 靑年이 鹿野苑에 뛰어들어 부처님으로부터 四聖諦, 十二緣起 , 八正道 說法을 들으면서 思惟 를 통해 그 뜻을 理解하고, 나아가 緣起法 說法을 들으면서 思惟를 통해 그 理致를 깨달음으로써 阿羅漢이 되었고, 野舍의 親舊들 54人이 鹿野苑에 뛰어들어 역시 같은 經路를 통해 阿羅漢이 되었습니다.
* 思惟事例 5: 布敎宣言
이렇게 60名의 阿羅漢이 生産됐을 때, 부처님께서는 “이제 이 世上에는 너희 60名의 阿羅漢 과 나 阿羅漢, 合하여 61名 의 阿羅漢이 있다!”고 외치면서 기뻐하셨습니다. 나아가, 부처님은 “우리 61名 의 阿羅漢은 이제 우리의 法을 世上 ‘끝까지 전하자.” 하시면서 布敎 宣言을 하셨습니다.
* 思惟事例 6: 迦葉 3兄弟와 1000名 弟子
布敎宣言 후 부처님도 우루벨라 村에서 修行 하고 있는 迦葉 3兄弟와 그들의 弟子 1000名을 濟度하고자 우루벨라 村으로 가셨습니다. 며칠도 되지 않아 迦葉 3兄弟와 1000名의 弟子들이 부처님께 歸依하게 됩니다. 一時에 1000名의 弟子群이 생긴 것이지요. 이 歸依 經緯에 대해 經典은 神秘가 감도는 談論으로 描寫하고 있지요. 神秘를 考慮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며칠 사이에 1000名 의 弟子群이 歸依해 왔을까요, 深奧 하고 理路整然한 四聖諦, 十二緣起, 八正道의 威力 德澤 입니다. 그들은 역시 最初의 八萬大藏經인 四聖諦 , 十二緣起, 八正道의 說法 을 들으면서 그 뜻을 思惟하면서 感動的으로 首肯했던 것입니다.
* 思惟事例 7: 산자야의 弟子들
迦葉 弟子들 1000名 歸依 후 얼마 되지 않아 산자야의 弟子들 250名이 一時에 歸依해 들어오게 됩니다. 歸依 因緣은 五比丘 중 하나인 馬勝比丘와 舍利弗 사이에 일어난 簡單한 해프닝이 그 歸依 의 據點이 됩니다. 馬勝比丘가 托鉢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자야의 弟子, 舍利弗의 눈에 托鉢하는 馬勝比丘의 모습이 너무 거룩하게 보였습니다. 舍利弗이 接近하여 “沙門이시여, 당신은 스스로 위대한 스승이십니까, 아니면은 어떤 위대한 스승의 弟子이십니까?”라고 質問합니다. 比丘는 “제 스승은 釋迦牟尼 붓다 이십니다.”라고 對答합니다. 舍利弗은 다시 “당신의 스승은 당신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라고 묻습니다. 比丘 는 답합니다. “모든 存在는 因緣 따라 일어나고, 因緣따라 사라진다고 나의 스승은 나를 위하여 그렇게 설하십니다. 諸法從緣生 亦從因緣滅 我師大聖主 爲我如是說”라고 하는 對答을 듣고 舍利弗은 緣起의 理致를 깨달아 버립니다. 舍利弗은 곧장 處所로 돌아가서 目犍連尊者에게 “어서 가세, 위대한 스승이 나타나셨네!”라고 고했습니다. 평소 舍利弗과 目犍連尊者는 서로 친한 道伴으로서 위대한 스승 나타나면 서로 알려주기로 約束하고 사는 사이였습니다. 산자야의 上首 弟子 두 분이 奔走히 일어나 떠나는 것을 보고, 250名의 모든 沙門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스승 산자야는 搜所聞하여 이 事情을 알고 두 上首 弟子 가 그리 判斷했다면 옳을 것이라 믿고 스승인 산자야도 뒤따라 달려와 釋尊께 歸依해버림으로 해서 짧은 時間에 釋尊의 弟子가 1250名이 되어 버렸습니다. 金剛經에 表記된 1250名 說 의 歷史的 據點은 바로 그것입니다.
* 思惟事例 8:
般若心經의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
色卽是空 空卽是色,
金剛經의 無有定法名阿臠多羅三藐三菩提, 四句偈, 등을 解悟主義 말고 理解할 길이
있겠습니까?
六祖壇經의 不思善不思惡을 해오의 길 말고 理解
할 길이 있겠습니까?
法性偈의 一微塵中含十方을 어떻게 理解
할 수 있겠습니까?
元曉의 骸骨通을?
相應部 3卷에 수십 번 드러내고 있는 無常苦無我의 解脫論을 解悟論 아닌 길로 解釋할 수 있겠습니까?
끝내는 말
八正道의 1, 2번을 注目하십시오. 思惟를 잘하여 바른 理致(正見)를 發見하고, 正見을 基準 삼고 思惟가 展開 됩니다.
戒定慧 三學을 注目하십시오. 慧 란 智慧롭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思惟, 思索)이 길입니다. 생각을 잘못하면 不幸 해지지만, 생각을 잘하면 幸福해지고, 생각을 더 잘 하면 解脫을 합니다.
사람의 삶은 思言行이 全部입니다. 속으로는 생각하고 밖으로는 말하고 行動 하는 것인데, 속으로 하는 생각이 얼마나 重要할 것 같습니까?
瞑想이란 瞑한 마음으로 想 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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