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21 講 修行四位와 頓忘六位

時間시간의 옵션 講義강의修行四位수행사위 頓忘六位 돈망육위입니다. 修行四位수행사위라고 하면 어떤 槪念개념이라도 떠오릅니까? 頓忘六位돈망육위라고 하면 또 어때요? 槪念定義개념정의가 아직 벙벙하죠. 그것도 모를 때 複雜복잡하지 알면 順理순이입니다. 修行四位수행사위는 수행을 해가는데 있어서 1 段階단계는 어떠하고, 2 段階단 계는 어떠한가 하는 것을 4 段階단계까지로 整理정이한 것입니다. 또 頓忘돈망은 6 段階단계整理 정이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로 엮어서 工夫 공부하기로 합시다.

여러들이 수행을 해간다 하면 勿論물론 관점에 따라서 달리 定義정의할 수 있지만은 一般論일반론으로 말하면 첫 번째로 價値觀가치관 정립이 되어야 합니다. 修行四位수행사위의 1번은 價値觀가 치관 정립입니다. 단 인 예를 들면 佛敎불 교인이다 하면 四聖諦사성제, 12 緣起연기, 八 正道팔정도, 이것이 價値觀가치관입니다. 釋迦牟尼석가 무니 당시에 이것이 佛敎全部불교전부였고 거기에다 옵션이 조금 붙어있을 뿐입니다. 釋迦牟尼석가무니께서 생존해 계실 때는 시도 때도 없이 그것만 가지고 설법을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4 성제, 十二緣起십이연기, 八正道팔 정도입니다. 佛敎 불교인이라면 4성제, 十二緣起십이연기, 8정도라는 이 法理법이를 하나의 價値觀가치관으로 딱 정립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수순을 어떻게 밟았는가 하면 4성제의 苦集滅道고집멸도 , 앞에서 말한 無明무명에서부터 老死노사까지의 열두 고리인 十二緣起십이연기, 正見정견 으로부터 正定정정까지의 八正道팔정도 를 딱딱 하나씩 暝想 명상하면서 지나가게 하였습니다.

苦諦고제라. 그렇지. 人生인생지.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 그것이 보이지 않느냐. 이런 으로 지나갑니다. 愛別離苦 애별리고라. 사랑하는 것과 작별하는 고통이라. 사랑하는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죽고 境遇경우 에 따라서는 아들 딸까지 죽어.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것이 고통 아니냐. 怨憎會苦원증회고라. 보기 싫은 것과 만나는 것도 고통이 아니냐. 이런 으로 八苦팔고를 쫘악 暝想명상하면서 苦諦고제다, 亦 是人生역시인생은 고다, 이렇게 느끼면서 暝想명상을 합니다. 그 다음에 集諦집제라. 이 고통들이 왜 오느냐. 貪瞋痴三毒탐진치삼독이라는 때문에 오지 않겠느냐. 그래 이 집 때문에 고가 온다. 滅諦멸제라. 集諦집제를 싹 끊어서 뿌리를 뽑아버리면 고가 사라져버릴 것 아니냐. 고가 사라져 버리는 意 識狀態의식상태. 이것이 아니냐. 그러면 멸이 되기 해서는 고의 貪瞋痴탐진치를 싹 뚝 끊어야 되겠는데 貪瞋痴탐 진치를 싹 지우는 길은 무엇이냐. 그것은 8정도다. 8정도 1번이 무엇이냐. 正見정견이다. 바로 價値觀가치 관 정립이다. 이런 으로 4성제, 12영기, 8정도를 좌악 暝想명상 합니다. 그런 으로 마치면 빨리 하면 30분, 천천히 하면 1 時間시간걸립니다. 한 時間시 간에 4성제, 十二緣起십이연기, 8정도를 쭈욱 暝想명상해 가는 재미가 보통 좋은 것이 아니고 그 基礎敎理 기초교이가 내 속에서 명료해져 가면 8만 대장경 모르더라도 佛敎불교인으로서 당당해 집니다. 이렇게 價値觀가치관 정립이 수행에 있어서는 첫 스텝입니다. 왜? 이 價値觀가치관 은 바로 가르침이니까. 가르침이 내 속에 되어져야 할 것 아닙니까?

두 번째 段階단계體解脫체해탈입니다 價値觀가치관 이 정립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깨달음이 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왜? 價値觀가치 관 이것은 하나의 깨달음 體系체계입니다. 理解體系이해체 계입니다. 깨달음을 가장 소박하게 이야기 하면 理解이해입니다. 知識지식과 지혜 이야기를 했지요? 그것과도 대비될 수 있습니다. 먼저 價値觀가치관 정립이 되려면 知識 體系지식체계先行선행必要필요가 있어요. 그것을 가만히 음미하면 과연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면서 지혜 體系체계로 내 속에서 자리를 딱 잡게 됩니다. 지혜 體系체계로 이미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깨달음이 내 속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깨달음을 觀行관행합니다. 거듭 觀行관행 합니다. 수행하는 겁니다. 수행. 행을 하다가 보면 내 속에 價値觀가치관 이 담고 있는 結果결과물이 있어요. 그 結果결과물은 어떻게 옵니까? 어떤 큰 자유감으로 옵니다. 空理공이같은 正見정견으로 諸行無常 제행무상이지 않느냐. 我空法空아공법공이지 않느냐, 하고 觀行관행합니다. 이런 部分부분 이 확연해지면 내 속에서 價値觀가치관이 몸에 익어들면서 오는 結果결과물이 무엇으로 오느냐 하면 解脫해 탈감으로 옵니다. 解脫해탈감. 그래서 그 자유로와지는 그 기쁨을 體解脫체해탈이라고 합니다. 暝想명상結果결과로 마음이 확 열려지는 체험이 體解脫체해탈입니다.

세 번째 段階단계用解脫용해탈입니다. 價値觀가치관 정립이 확연하고 문득문득 體解脫체해탈이 되는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게 됩니다. 일상생활을 할 때 體解脫 체해탈價値觀가치관 이 적용되어 자유로움을 生活생활하게 됩니다. 그래서 生活생활과 내 價値觀가치관 이 일원화됩니다. 이것을 用解脫용해탈이라고 합요. 解脫해탈價値 觀가치관을 정립하고 그것을 거듭 觀行관행 하니까 暝想명상중에는 완전히 宇宙的우주적으로 마음이 열려서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이 意識의 식을 체험하게 되는고, 할程度정도로 좋습니다. 이것이 體解脫체해탈입니다. 그러면 生活생활 속에는 實踐실천입니다. 實踐실천에 부딪치면 온전히 體解脫체해탈이 살아집니까, 아니면 살아지지 못합니까? 어렵습니다. 마음속에서는 解脫해탈입니다. 구나겠지감사 暝想명상 을 할 때는 解脫해탈해 버린 것 같은데 實踐실천에서 “이놈아!” 하니까 氣分기분이 팍 상해버린단 말입니다. 이것은 用解脫용해탈이 아직 부족하다는 걸 의미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익어지다 보면, 첫 째, 둘 째 段階단계가 익어지다 보면 生 活생활 속에서도 문득문득 적용되어서 “이놈아!” 하더라도 걸려들지 않고 “으흠~, 으흠~ 나한테 이놈아~ 하는구나. 뭐, 이놈아 할 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저러 저러한 사정이 있을 수도…” 하면서 理解이해가 다 되기 때문에 生活實踐생활실천에서도 解脫해탈이 됩니다. 生活생활 속의 활용 段階단계에서도 解脫해탈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用解脫용해탈입니다. 그래서 여러들이 同事攝工 夫동사섭공부를 하면서 講義강의를 듣고 暝想명상할 때는 價値觀가치관 정립이 되고 體解脫 체해탈이 막 경험이 된 것 같은데 實踐실천에 가면 또 걸려가지고 아웅다웅 하는 식이지 않습니까. 이러면서 점점 用解脫용해탈이 되가는 것이 느껴질 겁니다. 이쯤되면 훌륭한 수행자지요.

그런데 수행완료는 이정도로 滿足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한 段階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네 번째 段階단계無意識解脫무의식해 탈입니다. 無意識 解脫무의식해탈. 꿈속에서 “이놈아!” 한다 해도 저절로 解脫해탈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자현미경으로 無意 識무의식을 찍어봤더니 탐.진.치 찌꺼기가 하나도 안 보이는 것이 無意識解脫무의식해탈 입니다. 이 無意識解脫무의식해탈境地경지妙覺佛묘각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無意識解脫무 의식해 탈까지 욕심을 낼 일이 아니고, 正見정견정립을 열심히 해서 體解脫체해탈만 하게 되면 3 과 4 은 점점점점 더 적응이 되어서 3 4 番道位번 도위가 더 올라가게 됩니다. 너무 심하게 매달리면서 “도대체 내 無意識解脫무의식해탈은 어느程度정도 됐을까요. 어느程度정도 됐을까요?” 이렇게 신경 쓰고 야단스레 굴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無意識解脫 무의식해탈은 그냥 그렇게 하면 되간다고 믿고 于先우선 할 일은 무엇이지요? 正見정견정립 선명히 했는가 보고 그것을 暝 想명상속에서 늘 경험하는 것. 이것이면 全部전부 입니다.

그렇게 하면 用解脫용해탈이 점점 되는 것을 볼 것입니다. 用解脫용해탈이 안될 때는 내 工夫공부길이 아직 멀었구나, 더 하라는 뜻이구나 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價値觀暝想가치관명상 중에서 體解脫次 元체해탈차원을 늘 경험해 가십시오. 그래서 이 1번과 2 이 현실으로 할 일 全部전부라고 볼 수가 있어요. 그러고 生活次元생활차원 에서는 조금 깨어있으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내 無意識무의식은 점점점점 자유로워져서 마음 저 깊은 곳에서 憂鬱症우울증이 사라져갑니다. 그래서 아, 10 年前년전만 해도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먹구름이 막 끼여 있는 것 같았는데 只今지금은 내 意識의식권에 먹구름이 없단 말이야, 이런 식이 됩니다. 그것은 無意識 解脫무의식해탈이 그만큼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修行四位수행사위 를 동심원 4개로 그려서 價値觀가치관정립부터, 그 다음에 體解脫체해탈, 그 다음에 用解脫용해탈, 無意識解脫무의 식해탈 순으로 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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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頓忘六位돈망육위構造구조가 비슷합니다. 頓忘六位돈망육위를 먼저 工夫공 부해 놓고 修行四 位수행사위와 이어봅시다. 여러 들이 頓忘돈 망을 하려면 그냥 있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냥 깨어 있음. 깨어 있는 意識狀態의식상태, 정확하게 말하면 깨어있는 意識의식만을 意識의식하고 있는心理過程심이과 정을 경험할 수 있어야 되요. 그렇게 깨어 있는 意識의식을 딱 意識의식하고 있는心理過程심이과정을 옴이라고 합니다. 頓忘六位돈망육위 의 1번은 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存在존재할 수 있는 存在존재 방식 중에 가장 순수한 存在존재가 옴입니다. 옴은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그냥 있는 것이고, 그냥 있는 것의 다른 이름이 그냥 깨어있음입니다. 그냥 깨어있음 이라고 하는 이 옴의 意識段階의식 단계는 감각도 허용이 안 됩니다. 槪念次元개념차원 에서 감각이 배제된 意識의식상태입니다. 그런 意識狀態의식상태가 현실으로 可 能가능한가 아닌가를 논하지 말고, 于先理論的우선 이론적으로 可 能가능하게 여겨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감각이 허용되지 않는 意識의식상태로 있어 보아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옴입니다. 그런데 현실으로 감각이 허용되지 않는 意識狀態의식상태 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감각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왜? 불가능한데 어떻게 불가능한 것을 계속하라고 하겠습니까?

이제는 감각을 살짝 허용해 보세요, 하는 것이 옴나입니다. 감각을 살짝 허용하게 되면 감각이 들어옵니다. 그러나 槪念개념 화는 하지 않습니다. 깨어있는 意識의식상태로 있되, 감각도 허용되기 때문에 감각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아도 됩니다. 옴을 할 때 감각이 막 들어옵니다. 감각 안 될 수가 없어요. 이 감각을 어떻게 피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제 옴나에서는 들어오는 것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들어오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槪念개념화만 안하면 된다는 겁니다. 가장 순수한 것, 理論的이론적으로 가장 순수한 것은 옴입니다. 그러나 實際실제로 옴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絶對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옴나를 허용해서 옴나로 있게 되면 充分충분滿足만족해도 됩니다. 옴나로 있으면서 槪念개념이 허용되지 않는 意識의식 상태로 이렇게 감각을 적당히 흘리면 수동성구나가 됩니다. 아까 옴이 가장 순수하다고 했는데 옴나도 槪念개념이 허용되지 않는 意識狀態의식상태이기 때문에 순수에 있어서 옴하고 똑 같습니다. 그러고 이것이 더 현실적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어요. 현실으로 엄정한 옴은 경험이 안 됩니다. 一旦일단 어렵다고 보면 됩니다. 100% 안되느냐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내가 처음에 옴 체험을 딱 했을 때는 分明분명히 100% 라는 감이 있었어요. 그 뒤로 나도 또 놓치고 또 놓치면서 옴나程度정도로 하고 있고 하는 세월이 늘 있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熾 烈치렬한 내가 그 部分부분에 이렇게 뒤뚱거리고 할 때야 世上세상 사람들에게 옴을 强烈강 렬하게 요구한다는 것은 相當상당히 무리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옴나를 개발해서 옴나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 나도 편해졌습니다.

마지막에는 걸림 없는 삶이重要중요한 것이지 엄정하게 옴이 되느냐 안 되느냐 이것은 事 實重要사실중요 한 것이 아니거든요. 옴이 엄정하게 되느냐 안 되느냐, 옴나가 엄정하게 되느냐 안 되느냐의 마지막에 걸림 없는 자유로운 삶이 있으면 그것이 묘각인 것이고 그것이 깨달음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意識次元의식차원에 있어서 어떤 체험이 되냐 안 되냐를 심하게 논하지를 마십시오. 적당히 옴을 중심으로 해서 옴이 체험된 것 같으면 拍手박수를 쳐주시고 옴나는 또 이것보다 훨씬 쉬운 것이기 때문에 되면 또 拍手박수 쳐주십시오. 그래서 옴 내지 옴나가 意識의식권에서 체험이 된다고 하면 훌륭한 거예요. 왜? 내 앞에 감각 世界세계가 한정없이 열려져 있는데 그 감각세계에 해서 槪念개념화하지 않고 걸림없이 이렇게 그냥 이러고 있을 수만 있으니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그 다음에 세 번 째로는 六位육위중에서 제 三位 삼위에 해당이 되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槪念개념화하지 않고 있으려고 할 때에 문득문득 방해하는 훼방꾼이 생기게 됩니다. 그것이 뭐지요? 바로 나입니다. 나. 그래서 我空아공必要필요합니다. 내가 하다. 이것은 나를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또 방훼꾼이 무엇이지요? 내 눈에 보이는 것들, 내 귀에 들려오는 것들이 방훼꾼입니다. 완전히 明鏡之水명경지수로 마음이 고요히 허공처럼 있으려고 하는데 내 自我자아가 꿈틀거리면서 그걸 흔들어버리고 밖에 눈의 對象대 상, 소리의 對象대상되는 것들이 나를 방해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안팎으로 整理정이를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안으로 我空아공하면서 自己자기를 딱 쓸어 보십시오. 나라는 것이 本來본래 없지 않느냐. 없지 않느냐, 없지 않느냐가 익어 들수록 나 쪽으로 가는 에너지가 쉬게 되는 것이 문득문득 느껴지고, 점점 더 느껴지고, 더 느껴지는 겁니다. 그래서 我空아공이 확연히 느껴져야 이렇게 살아갈 때 나 쪽의 에너지가 없어요. 나 쪽에 무엇인가 마음 써야 되는 에너지가 없다면 얼마나 편하겠어요? 그래서 세 번 째 段階단계我空아공입니다.

네 번째, 法空법공도 마찬가집니다. 밖의 것에 신경이 너무나 쓰여. 밖의 것에 집착이 돼. 그것도 얼마나 不便불편 해요. 그런데 4 위로 法空 법공이 되면 밖의 것에 가던 신경이 딱딱 잘라져버립니다. 그러고는 쉬게 됩니다. 이렇게 我空 아공되었고 法空법공이 되면 하루하루가, 瞬間순 간순간이 어떤 식이 되겠습니까? 드디어 걸림 없는 삶이 됩니다. 이러한 토대가 튼실하게 되면 그 結 果결과로서 5위의 걸림 없는 삶이 살아집니다.

걸림 없는 삶. 이것이 全部전부입니다. 걸림 없는 삶을 살자고 여러 가지 장치를 쓰는 것입니다. 옴이라고 하는 장치를 하고, 옴나라는 장치를 쓰고 我空아공 이라는 장치, 法空법 공이라는 장치. 여러 깨달음의 장치는 깨달음 自體자체 眞理진이이기 때문에 그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장치를 해서 내가 자유로워지자고, 걸림 없는 삶을 살자고 그것들이 방편으로 必要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들이 무슨 我空아공, 法空법공이런 것들을 眞理 진이시하면 안 되요. 眞理진이시하면 나의 자유 여하와는 상관없이 眞理진이라고 하는 어떤 금자탑을 세워놓아야 될 것입니다. 나의 행, 불행과는 상관없는 眞 理진이라고 하는 것을 眞理진이의 전당에다가 탁~ 세워놓아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 세워놓고 나는 무엇 하려고 영원히 여기에서 일하고 꺼벙하게 살고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佛敎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은 방편이지 實體실체화되어진, 화석화된 眞理진이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6 번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5위로만 整理정이했어요. 그러다가 하나를 더 붙였습니다. 내가 경계에 걸렸단 말입니다. 어떻게 딱 걸렸어요. 그런데 걸리기는 했으나 바로 빠져나와서 마음속에 흔적이 하나도 안 남아. 이 새끼야! 하는데 瞬間순간 딱 걸렸지만 내가 다시 精神정신을 싹 차렸습니다. 그런 다음에 내 마음을 찍어보니까 이 새끼야, 한 것에 한 흔적이 내 마음에 전혀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흔적이 전혀 없다면 여러 들 느낌에 어떻습니까? 아. 道人도인이지요. 야, 이 새끼야, 하고 화도 한 냈어. 그런데 딱 돌아서면서 다 잊어버렸어. 寫眞사진 을 찍어보니까 (21世紀세기 말에는 그런 寫眞器사진기도 나온다고 그랬지요? 앞으로는 道人도인인지 아닌지 그 寫眞器 사진기 나오면 다 들켜버린다고) 흔적이 하나도 없거든. 그러면 악쓰고 이러고 저러고 수작은 좀 떨었다고 하더라도 흔적만 없다고 하면 그 사람 拍手박수쳐주어도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걸림 없는 삶이냐, 아니냐를 너무 다투면서 複雜복잡 떨 것 같아서, 네가 걸리냐 아니냐 하는 것이 問題문제가 아니고 흔적이라도 없으면 됩니다. 그래서 흔적 없는 삶이면 너를 道人 도인이라고 認定인정을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놓고 누가 第一제일 좋았는지 아세요? 내가 第一제 일 좋았어요. 뭔가 숨통이 좀 열려요. 흔적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方今방 금 화를 냈어요. 야, 원경, 너 只今지금 어째 저째~~~~~~~~~! 그리고는 아이고, 아이고. 또 화를 내냐… 이렇게 후회를 하고 막 그럴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내 속에서는 딱 돌아서면 아무렇지 않거든. 이때 寫眞사진을 딱 찍어봤더니 흔적이 하나도 안 남아 있어. 그럼 아까 화냈던 것은 괜찮아요. 노 프러블럼입니다. 욕먹은 사람이 목만 안 달았으면 됩니다. 뭐,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흔적 없는 삶이라고 六位육위를 해놓으니 내가 숨통이 트여서 깊은 深呼吸심호흡이 되더라니까요.

이상이 頓忘六位돈망육위입니다. 그러면 頓忘六位 돈망육위修行四位수행사위와 연결해서 한 생각해 봅시다. 옴, 옴나, 我空아 공, 法空법공. 이 모든 것들이 結局價値觀결국가치관 정립입니다. 이 價値觀 가치관을 거듭 暝想명상을 하다 보니 내 속에서 자유감이 느껴지고 걸림 없는 삶을 이렇게 살게 됩니다. 그럼 이 걸림 없는 삶이 生活생활 속에서 살아질 때는 이것이 用解脫용해탈쪽에 들어가고 暝想명상중에 된다면 體解脫 체해탈쪽에 들어가게 됩니다. 흔적 없는 삶, 이것도 마찬가지로 生活생활 속에서 흔적 없는 삶을 살면 되고, 또 흔적 없는 삶도 結局用 解脫결국용해탈로 연결이 되는 식입니다. 그러면 無意識解脫무 의식해 탈은 여기서 무엇이라고 해놓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의 삶을 살다보면 내 無意識무의식까지도 끝내 淨化 정화되어질 것 아닌가 하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 一般論일반론을 얘기할 때에는 수행 4위 쪽이 좋고, 고급과정에서 頓忘돈망을 논할 때는 頓忘 六位體系 돈망육위체계로 해서 說明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고 이 두 가지 것은 거의 體系체계가 비슷하게 배대되기 때문에 함께 엮어 보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修行四位수행사위頓忘六位工夫돈망육위 공부理論 的이론적으로 살짝 해보면서 結論的결론적으로 여러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1번으로 修 行四位次 元수행사위차원에서 볼 때 날카로운 價値觀가치관 정립을 잘 해야 되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나는 價値觀가치 관 정립이라는 次元차원 에서 무슨 정립을 只今지금 해왔지? 어떤 정립이 되어있지? 하면서 좀 스스로 물어보세요. 어떤 價値觀가치관 정립이 되어 있어요? 同事攝동 사섭인이라면 五要 價値觀오요가치관이 아주 좋습니다. 五要價値觀오요가치관은 이론 버전입니다. 그럼 實踐실천버전으로는 무엇이 좋아요? 人生三重奏인생삼중주가 좋습니다. 그러니까 人生三重奏인생삼중주 또는 5대 原理원이와 같은 價値觀가치관이 얼마나 선명하게 정립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暝想명상속에서 얼마나 해가지고 내가 體解脫체해 탈을 얼마나 살고 있느냐, 이런 으로 自己자 기를 돌아보는 時間시간으로 좋지 않습니까? 그러고 頓忘돈망 파지를 하신 분이든지 아니면 도전해가고 있는 들은 頓忘六位 次元돈망육위차원 에서 한番自己번자기를 점검해 보십시오. 내가 그냥 깨어있음, 옴으로 얼마나 순수하게 깨어 있느냐. 감각은 허용하되 槪念개념화하지 않는 수동성구나, 옴나 체험은 얼마나 되어 있느냐, 이런 으로 말입니다. 거기에다가 플러스 알파로 我空아공, 法空법공 이 내 속에 어느程度정도 감으로 오느냐. 我空아공, 法空법공 하면서 宇宙우주를 딱 쓸어버리면서 딱 이렇게 깨어있을 때의 그 宇宙的우주적인 자유감이 어떠 하냐. 그래서 내가 일상사 生活생활 속에서 걸림 없는 삶을 얼마나 살고 있느냐. 그런 으로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치고 받고 싸웠더라도 뒤끝이 깨끗해서 寫眞사진을 찍어 보아도 흔적은 없을 것 같아, 그런 의 생각도 해보고 경험도 해보고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여러들 어때요? 흔적 없는 삶. 기막힌 발상 아닙니까? 나는 내 스스로에게 참 잘했다고 그랬어요. 걸림 없는 삶이라고 하면 무엇인가 삶을 폐쇄시켜 버린 감이 있잖아요? 그런데 살다가 보면 道人도인이라도 화가 납니다. 우리 큰스님도 언듯하면 화를 내셨어요. 또 우리 큰스님만이 아닙니다. 내 記憶기억에는 큰스님이라고 하는 사람일수록 화를 많이 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어떻게 통과시킬 것인가 볼 때 5번 잣대만 만들어 놓았다면모두 道人도인이 아닌 겁니다. 그거, 큰일 아닙니까? 그런데 딱 寫眞사진을 찍어보니까 흔적은 깨끗이 없어. 亦是道人역시도인입니다. 흔적 없는 삶.

자, 이 두 개를 엮어서 이 時間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들의 삶에 오늘의 이 時間工夫시간공 부거리가 도움 되시길 빌면서….

感謝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