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19 講 觸受 構造
安寧하세요?
復習 時間 좋지요? 이제 이 時間은 옵션 講 義입니다. 只今부터는 이 옵션 講義로 몇 자락을 하려고 합니다. 이 時間 에는 觸受 構 造를 합니다. 觸受 構 造, 記憶나십니까? 觸受 構造 하면 또 어때요? 여러 分들에게 觸受 構造 라고 하면 또 어떤 메시지로 다가옵니까? 觸 과 受 를 이야기 하려면 좀 길어질지도 모르겠는데요.
于先 十二 緣起의 연결고리를 써 보겠습니다. 한글로 쓰겠습니다. 無明, 行, 識, 名色, 육입(六入 ), 觸 , 受, 愛, 取 , 有, 生, 老 死. 이것이 十二緣起 이고 이 十二 緣起는 釋迦牟尼가 보리수 하에서 大 覺을 성취하실 때 思惟하셨던 思惟 내용입니다. 十二 緣起의 여섯 번째 고리와 일곱 번째 고리, 이것이 觸, 受입니다. 이 觸受를 잘 들여다보고 우리들 속의 삶의 原理를 거기서 찾아내보자 하는 것이 이 觸受 構造입니다.
十二緣起를 썼으니까 조금만 說明을 붙인다면 이 고리를 三 世兩重因 果라고 합니다. 내가 딱 世上에 태어났다 할 때는 육입을 갖추고 태어나야 됩니다. 眼耳鼻 舌身意. 눈, 귀, 코, 혀, 몸뚱이, 마음 이런 육입을 갖추고 世上에 태어납니다. 그런데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내 世 上을 헤아린다면 識부터입니다. 여기서부터 前 生의 어떤 자의 죽음으로 인하여 현존했던 業識 이, 흔히 말해서 혼이, 어머니 뱃속에 딱 들어오는 託胎 一念이라고 합니다. 태에 딱 들어올 때의 그 한 생각. 그래서 託 胎一念이라고 하는데 이 識, 이것이 어머니 뱃속에 들어왔다 하게 되면 名色의 過程을 거치게 됩니다. 名色 은 아버지의 精子, 어머니의 卵 子, 精子 卵子가 合해진 물질적 것으로 이것이 몸뚱이, 말하자면 色 의 基礎가 됩니다. 이렇게 식은 名色이 됩니다. 精神 的인 요소와 물질的인 요소가 合해진 마음과 몸이 육입을 갖추어지기 以前의 段階 가 있어요. 이것이 몇 개월간 진행되서 점점 세포분열이 되면서 眼耳 鼻舌身意 를 갖추게 됩니다. 그래서 7, 8 개월 되게 되면 어머니 뱃속에서 완전히 사람이 다 되어 있지요. 그러나 1, 2 개월 사이에는 그냥 덩어리 하나만, 조그만 덩어리 하나만 있지. 눈, 귀, 코가 생기기 以前 狀 態입니다. 이렇게 눈, 귀 이런 것이 생기기 以前 을 名色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머니 뱃속에 식이 딱 들어와서부터 名色過 程을 거쳐서 육입을 가지고 世上에 태어나자마자 이제 밖에 있는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하면서 色, 聲, 香, 味, 觸, 法을 觸하게 됩니다. 육입을 가지고 밖에 있는 色聲 香味觸法 을 觸하게 되면 觸하자 마자 느낌을 隨 伴하게 됩니다. 그래서 無明과 행을 前生, 過去 二因이라고 하고 식, 名色 , 육입, 觸, 受를 現 在五果라고 합니다.
前生의 無明으로 인해서, 無明이라는 精神 的인 未成熟함 때문에 생이 始作되어서 는 이런저런 생을 살다가 죽게 되면 식 덩어리 하나가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와서 육입을 가지고 世上에 태어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태어났다 하게 되면 죽을 때까지 무엇을 하고 사느냐 하면 육입을 가지고 무엇을 觸하면서 느끼고, 애착하고, 집착을 하면서 성취하려고 하고 이 過程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애, 취를 通해서 계속 내 속에 흔적을 만드는데 그것이 有로 남게 되어요. 그러면 愛取 有, 愛取有 , 愛取有를 수없이 反複하게 됩니다. 愛取 有, 愛取有를 反複을 하는데 유는 우리들 속에 있는 業識, 다음 世上을 決定하는 혼 덩어리라고 보면 되요. 다음 世上 을 決定하는 혼 덩어리에다가 계속 흔적을 남기는데 흔적을 남기는 因이 무어냐 하면 애취입니다. 무엇인가를 느꼈다 하면은 바로 愛取有로 이어져요. 그래서 이 유 라고 하는 것이 눈덩어리 커지듯이 커집니다. 이것이 업장 덩어립니다. 그래서 목숨이 딱 끊어졌다 하면 이것이 다음 世上에 다시 태어나서 또 다음 世上에 죽게 되는 이런 過程을 밟는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無明과 행은 過 去二因, 식, 名色, 육입, 觸, 受는 現在五果, 愛取有는 現 在三因, 生 과 老死는 未來 二果, 이런 式으로 해서 ‘三世 兩重 因果 ’라고 합니다. 只 今 工夫는 觸, 受입니다. 자 그러면 觸, 受 를 整理해 봅시다.
여기에 識主體 機 能이 있어요. 識主體 機能을 分 析的으로 얘기하면 眼識 , 耳識, 鼻 識, 舌識, 身識,意識 이렇게 해서 육식으로 나누어야 하지마는 그냥 識主體 機 能 하나가 여섯 가지로 다 작용을 하기 때문에 딱 識 主體 機能이라고 하면 됩니다. 識主體 機能이 眼, 耳 , 鼻, 舌, 身, 意 라고 하는 감각 기관을 가지고 이 감각 기관으로 감각하는 감각 對象 은 무엇이겠어요? 眼의 對象은 色, 耳. 귀의 對象 은 聲, 코의 對象은 香 , 혀의 對象은 味 , 몸의 對象은 觸, 의의 對象은 法. 이래서 識 主體 機能이 眼耳鼻舌 身意라는 감각기관을 通 해서 감각의 對象이 되는 色 聲香味觸 法을 딱 만나요. 여기에도 觸이 있지만 이것은 신의 감각 對象으로서 觸이고 觸 受 構造의 觸은 감각 기관과 對象이 만나는 이 全 體 過程을 말합니다. 그러면 眼은 色을 만났다. 眼은 色 을 觸했다. 耳는 聲을 觸 했다. 鼻는 香을 觸 했다. 舌은 味를 觸, 身 은 觸을 觸했다. 意 는 法을 觸했다. 이래야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내 눈이 색깔을, 어느 색깔을 만났다 하게 되면 거기에 相應하는 무엇이 나와요? 느낌이 나오죠. 그 느낌을 受라고 그럽니다. 이 受가 바로 十 二緣起의 受입니다. 내 눈이 어떤 색깔을 보면 어떤 느낌이 딱 일어납니다. 내 귀가 어떤 소리를 들으면 거기에 相 應하는 느낌이 일어나요. 코가 어떤 것을 냄새를 맡으면 거기에 相應 하는 受가 일어나고 혀가 어떤 맛을 보면 거기에 相 應하는 느낌이 있고 몸이 무엇에 딱 닿게 되면, 觸覺을 하게 되면 거기에 相應하는 느낌이 생기고 내 마음이 어떤 것을 생각하게 되면 거기에 相應하는 느낌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人 生입니다.
재미있습니다. 佛敎의 이런 敎理들은 놀라워요. 놀랍습니다. 佛敎 敎 理들을 보면 참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아, 생각을 해보십시오. 이것이 人 生 이다 할 때 “정말 그렇겠다.” 하는 감이 들어요? 안 들어요? 딱 들어버립니다. 佛 敎는 이런 式으로 이 宇宙 를 다 定義해 놓았어요. 그래서 이 僧服을 입고 자화자찬하는 식이 되서 좀 그렇습니다만 나는 佛 敎 만난 것이 무슨 복이냐 합니다. 法理 하나하나 다 음미해보면 여지없어요. 정~말 그렇다 하게 됩니다. 정말 그런 이것을, 이 말씀을 접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내 속에서 이걸 解決하겠느냐 하는 것이 수없이 생깁니다. 그래서 觸受構造이 部 分만을 보더라도 통쾌해 집니다. 개운해져 버립니다.
그럼 이 狀況에서 이것이 人生인데 여기서 우리들이 뽑아낼 수 있는 敎訓은 무엇이겠느냐 이거예요. 여기서의 敎訓. 敎訓 을 얘기하자면 受 부터 强調해야 될 거예요. 여러分들이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왜 눈으로 보는 색에 對해서 이러고 저러고 합니까? 그것을 눈으로 볼 때 내가 기쁘니까. 受, 受가 좋으니까 그럽니다. 또 내 눈으로 어떤 색깔을 피하려고 합니다. 왜 피하려고 그래요? 그 색깔을 보면 내 受가, 氣分이 나쁘니까. 내 느낌이 나쁘니까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 내 귀로 소리를 들으려고 한다면 어때요? 그 소리를 들으면 내가 氣分이 좋아지니까. 또 코로 어떤 향기를 자꾸 맡으려고 합니다. 여러 分 들이 향수 바르고 어쩌고 하는 거 있죠? 그거 어때요? 그거 향기가 좋아서 그래요. 그 향기를 맡으면 어때요? 氣 分이 좋으니까 그럽니다.
또 오늘 낮에 메밀국수 먹으러 가자, 하고 어느 식당을 찾아 가게 됩니다. 이건 왜 그래요? 내 혓바닥에 그것이 딱 닿을 때 맛이 좋아서 그럽니다. 저기 가면 60년 歷 史를 지닌 메밀 국수집이 있습니다. 바로 가까운데. 걸어서 5분 거리에요. 거기를 그저께도 살짝 갔고, 어저께도 갔다 왔어요. 거기로 가면서 여러分들하고 時間 을 조금이라도 더 갖으려면 내가 여기 식당에 있는 것이 좋을 텐데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 식당은 칼로리가 많고 메밀은 칼로리가 적잖아. 또 국수 외엔 다른 것이 나오지도 않아. 칼로리가 적어서 좋고, 맛은 뿅~ 가. 그러니까 에이~ 나의 幸福과 건강을 爲해서 그쪽으로 가자 합니다. 그것도 메밀국수의 그 맛이 내 혀에 딱 닿을 때 내가 氣 分이 좋아서, 受가 좋아서 찾아다니는 겁니다.
또 몸뚱이에 觸합니다. 몸뚱이로 무엇에 딱 닿는다 할 때 가장 代表 的으로 좋은 것이 무엇이에요? 가장 代表 的인 것. 섹스입니다. 섹스. 인간 世上 뿐 만 아니라 모든 動物 世 界에서도 그것은 섹스입니다. 왜 그러냐. 종족보존을 爲해서 그런다고 하지만 섹스할 때 느낌이 좋으니까 하는 것이지 섹스할 때 氣分이 팍 나빠, 팍 나빠, 팍 나쁘다면 종족보존이 아니라 무엇을 爲해서라도 안 할 것입니다. 氣分 이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또 내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마음속에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왜 그것을 떠올리려고 하느냐. 느낌이 좋으니까. 그렇다면 人 生 은 무엇입니까? 느낌 좋자는 것이다. 이것입니다. 어째서 도를 通하려고 하느냐. 어째서 道를 通하려고 하느냐 할 때 ‘도’가 뭣인지 아세요? 도는 무엇일까요? 色聲香味 觸法 중에서 어떤 것일까요? 내 識 主體 機能이 내 마음을 通해서, 도를 通하려고 그래. 도는 어디에 있겠어요? 법에 있습니다. 이 法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有爲 法이 있고, 또 하나는 無爲 法이 있어요. 그래서 有爲 法을 通해서도, 氣分 이 좋아질 有爲法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無爲法 을 내 식이, 내 마음, 意根을 通해서 無 爲法을 딱 만났더니 이 受가 무한히 좋아버리니까 도를 通하려고 하는 거예요.
이것이 觸受構造 현상인데 이 現象을 通해서 우리들이 어떤 명제를 끌어낼 수가 있겠습니까? 자, 첫 째, 受가 人生 의 目的이로구나, 하는 것입니다.
佛敎에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음 생에 늙어죽지 않으려면 태어나지를 않아야 된다. 태어나지를 않으려면 태어나는 씨앗이 되는 유를 씻어버려야 된다. 그래서 유가 깨끗해지려면 집착하지 않아야 된다. 집착하는 행위를 안 하려면 무엇인가에 對 해서 좋구나~ 하는 애착이, 애가,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이 受가 아이고, 좋아~ 하는 좋은 느낌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이런 느낌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觸 自體 를 안 하면 된다. 觸을 안 하려면 육입이 없어지면 된다. 육입을 안 하라면 名色이 없어지면 된다. 名色이 없어지려면 식이 없어지면 된다. 식을 안 하려면 행이 없어지면 된다. 행이 없어지려면 無明이 없어져버려야 된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無明이 없어지면 행이 없어지고, 행이 없어지면 식이 없어지고, 없어지고, 없어지고~~~ 없어져서 나중에는 老死, 늙고 병들고 하는 이런 것이 없어져 버린다.
그렇다면 結局은 窮極 的으로 十二緣起의 結論的 인 계명은 무엇이냐. 無明을 벗어나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無明이란 무엇이냐. 나다, 너다 하는 생각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이야기 次元에서 보면 觸, 受는 結局 어떻습니까? 얼른 없애버려야 할 것이라고만 强 調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佛敎 인들이 觸受 構造를 놓고, 龍陀스님이 이렇게 재해석해내는 것처럼 해석해 낸 境遇가 없어요. 나는 무엇을 보았느냐. 受를 본 것입니다. 受는 志向하고 고양시켜갈 일이 있는 것이지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을 내가 통찰한 거예요. 釋迦牟 尼의 깊은 哲學을 理 解하지를 못할 것 같으면 受는 아예 없어버려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없애버린다는 말은 端的으로 틀렸는가 하면 그건 아닙니다. 여기서는 없애버린다는 槪念보다 이 受가 윤회의 원인이 되는 그런 측면을 止揚하라는 의미입니다.

자 그래놓고 잘 봅시다. 여러分들이 오늘 하루를 삽니다. 오늘 하루 살 때 여러分들은 어떻게 살아요? 육입을 가지고 뭣인가를 觸하게 되죠. 그러면서 바로 느낍니다. 맞습니까? 뭔가를 觸하고 느낍니다. 그래서 느낌 좋으면 좋지요. 느낌 거듭 좋으려고 하지요. 70억 중에서 몇몇 程度가 그러고 있겠어요. 70억 全部가 그럽니다. 70억 그 모든 사람들에게 受하지 말란 말이야. 너 왜 受에 떨어져 있냐. 受 말아라~! 한다면 이것이 通하겠습니까? 안 통합니다. 絶對로 통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해야 되겠는가? 受를 勸奬하되, 보다 높은 受로 나아가도록 합니다. 보다 높은 受로 나아가서, 지고하게 높아져서 그 이상 더 없을程度 로 높아져버린 그 受까지 올라가라고 勸奬을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없애버려라 하는 式 으로 하게 될 것 같으면 되지도 않아요. 그렇게 되면 현실을 완전히 否定 해버리게 됩니다. 인류 전 歷史를 否 定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佛敎의 역동성을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그런 敎理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十 二緣起, 이 敎理를 잘못 해석하게 되면 삶의 역동성을 배제시켜 버린 佛敎 가 되는 겁니다.
여기서 내가 내 나름대로 통찰한 것은 受를 살려내자 하는 것입니다. 왜? 너나 할 것 없이 70억 전 인류가 시도 때도 없이 受 를 志向하고 살고 있는데 端 的으로 그 受에 X 표 탁 쳐가지고 이것 쓰면 안 돼! 式의 논법을 쓴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겁니다. 그러면은 受가 싹~ 없어져서 無 明을 벗어나버렸다고 해봅시다. 그럼 無明 을 완전히 벗어나 버렸을 때 여러 分들 어떻겠어요? 無明을 완전히 벗어나 버렸을 때의 느낌은 어떻겠습니까? 無明 을 완전히 벗어나 버렸을 때 受는 어떻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겠습니까? 아니요, 受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러겠습니까? 그러면 解脫 이 돌멩이 되자는 것이냐. 無 明을 씻어 버린 것이 解脫인데 解脫됐다 하면 돌멩이가 된다는 그 뜻이냐?
이 十二緣起 고리가 淨化되고, 되고, 될수록 바로 here and now의 結 果물로 딱 떠오르는 것은 受요, 느낌으로 떠오릅니다. 十二緣起고리가 淨化되고, 되고, 되어간다. 그러면 淨化 가 되어가고 있음을 가장 가까이서 체험하는 것은 here and now 의 受입니다. 이 受를 單純 논리로 배척해버리지 말고 복합논리로, 釋迦牟尼가 해석을 덜 해놓은 그런 대목을 좀 살려내야 됩니다. 그래서 同事攝 에서는 이 觸受 構造 를 살려 놓고, 受가 人生 의 目的이라고 하는 것을 대서특필을 합니다.
十二緣起의 受를 人生의 目 的이라고 이야기 한 곳을 나는 보지는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아, 어디에 보니까 어느 佛 敎 전문가가 受가 人生 의 目的이라고 分 明히 했네요, 하고 일러주면 내가 아주 큰 힘이 되겠어요. 이 部分 에서 내가 늘 외롭습니다. 외롭고 佛敎전문가와 熾 烈한 토론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勿 論 토론을 한다면 토론을 할 준비는 恒常 되어있지요. 그럼 한 사람이 나와서 이런 式으로, 單純 논리로 受를 否定해야 되는데 왜 당신은 受를 부추겨? 하고 나온다고 합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당신 삶을 가지고 내가 質 問을 한番 해보겠습니다. 당신 아들 있어요? 딸 있어요? 아들도 있고 딸도 있습니다. 學校 다녀요? 다닙니다. 당신 아들 딸이 學校에서 1등을 하면 당신 좋아요? 안 좋아요? 좋지요. 그러면 그 좋은 것이 바로 受인데 당신의 幸福, 그 좋음은 어떻게 整 理를 하실 거예요? 그러면 예, 나는 저차저차저차~~~~이라고 나올 수도 있겠지요. 할 이야기가 많아요. 受 가 人生의 目 的이고, 受는 고양해가야 할, 淨 化해가야 할, 더 더 淨化해가야 할 그 무엇인 것이지 참으로 없애버려야 그 무엇은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얻어낼 수 있는 것. 受가 보다 좋도록 6경 管理 를 하라. 이 타임에는 度時未 他生이 좋습니다. 도시미타생 이라고 하는 것은 幸 福조건의 가치를 재는 척도입니다. 여러分들 指 導者 過程유인물 교재에 보면 定義가 되어 있으니까 보시면 될 겁니다.
그럼, 6경 管理. 6경 管理란 무엇입니까? 色관리를 爲해서 여러分 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어요? 여러分들 주변을 整理정돈 하는 것도 색 管理예요. 또 색 管 理가 무엇이겠어요? 조경을 좋게 해가지고 마당에 수목이며, 돌멩이며 적당하게 藝 術的으로 꾸민 것도 색깔 管 理입니다. 이런 管理들을 잘해서 네 눈으로 볼 때마다 더 기뻐지도록 하라, 하는 겁니다. 눈으로 보면서 굳이 찌푸리게 되는 쪽의 색깔을 무엇 하려고 내동댕이쳐 두느냐 하는 겁니다. 소리도 마찬가지, 향도 마찬가지, 全部 이런 식입니다. 그래서 受가 보다 좋도록 6경 管理 를 하라 그거요.
그래서 一般的으로 위에서 말한 式으로 삽니다. 이 두 번째를 有爲라 합니다. 그런데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하면 한 장만 이렇게 넘길 것 같으면 바로 無爲가 있는데 그 無爲法을 觸해야 됩니다. 법에는 有爲法과 無 爲法 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無 爲法을 觸한 것을 道 通이라고 그래요.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그럼 無爲 法은 무엇이냐. 空의 理 致, 空理, 이것이 無 爲法입니다. 그러면 공의 理 致, 空理라고 하는 法 을 내 마음이 딱 만났습니다. 딱 만나버렸더니 어떻습니까? 공의 理致 가 아하! 아하! 하고 首肯됐습니다. 이때 어때요? 천하의 主 客이 일시에 頓忘 되버린 것입니다. 딱 되어버리면서 무엇인가를 향하여 내 마음이 아웅다웅 아웅다웅 하던 모든 마음이 탁 놓여지면서 마음이 宇 宙的으로 탁~ 트여서 열려져 버립니다. 그 때의 受는 어떻겠습니까? 그것이 니르바나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는 無爲 法을 觸해서, 無爲法을 깨달아서 宇宙 적 자유를 살아라, 하는 것입니다. 宇宙적 자유를 산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하나 더 보탤 必要가 있습니다. 無 爲法을 觸해서 宇宙적 자유가 된 자가 그때부터 할 일은 무엇이겠어요? 無爲 法이 열려서 宇宙적 자유인이 되었을 때, 되버린 자가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이제 완전히 열려가지고 할 것이 없어져 버렸어요. 그러면 할 것이 있겠어요? 아니면 없겠어요? 이제 제대로 할 것이 있다는 겁니다. 왜냐? 그것을 모르고 이쪽을 집착하면서 아둥바둥하면서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너무도 안타깝게 自 己 깜냥으로는 幸福해진다고 努力을 하는데 자꾸 걸려서 地獄을 살고 싸움을 하고 있는 이 世上을 건져야되겠다 하는 自 覺이 나오겠습니까, 안 나오겠습니까? 자, 無爲 法을 잡은 다음에 할 일은 慈悲 行입니다.
여기에서 할 말이 조금 있습니다. 無爲法을 완전히 잡았다 한 사람 중에 智證菩薩 은 그대로 니르바나로 잠적해 버리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살도를 하려면 지고한 境地에 가기 以前에 四 無量心을 닦아라 하고 되어 있어요. 天台智子의 禪學入門이라고 하는 冊을 보면 그 部分이 해석되어 있습니다. 그 部分에 내가 宏壯 히 感動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滅 盡定에 가버리게 되면 안 돌아와 온다는 것입니다. 대보살 하나가 無 爲로 가버리고 사바세계로 안 돌아오면 또 어떤 次 元의 의미는 있겠지만 유감이잖아요. 네가 世上 에 다시 돌아오려면 네 속에다가 돌아올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因 을 심어 놓아야 한다. 그 인이 無量心, 慈 悲喜捨, 말하자면 자비심을 길러 놓아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자비심이 씨앗이 되어서 世上에 보살로 다시 나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觸受構造를 여러分들이 이런程度로 整 理해서 理解하고 이것을 삶의 한 교재로 활용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感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