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11 講 죽음 暝想

하세요.

에 보고 또 보네요. 이 는 죽음 입니다. 죽음 해 봅시다. 자, 입니다. 이라 하면 무엇으로 느껴집니까? 이것이 이고, 이고, 이고 이고 그리고 입니다. 에서 첫 이고 다음으로 바로 이어서 처럼 됩니다. 이어서 를 한 만큼 가 일어나고, 하게 되면 하고자 하는데 마음대로 안 되니까 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 , , 를 수없이 을 하면서 또 하나의 강력한 인 불만 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 , 滿 들이 옳은 냐 하면은 잘못된 예요.

가 없는데 가 있다고 생각하니 어리석음이요, 이것은 그냥 이것일 뿐인데 얼마짜리라고 하는 자체가 맞지 않으니까 이것도 어리석음이요, 넘치는 속에 있는 인데 불만을 하고 있으니 滿 도 어리석음이어서 이것이 어리석을 입니다. 이고 이라고 합니다. 을 보면 [ = / ]입니다. 속의 이 속의 이 입니다. 이 의 뿌리에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또 이것의 가 바로 따라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으로 썼을 뿐이지 이 를 잘 들여다보면 이미 어리석은 가 되고, 또 바로 됩니다. 가 바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는 바로 , , 입니다. 이 , , 만큼 은 누리기가 어렵다 그겁니다. , , , 을, 한다는 말입니다.

죽음 이라고 하는 것은 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서의 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을 , , 라고 한다면 , , 집합인 이 을 다루는 것이 죽음 입니다. 앞에서 했듯이 내가 이 에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할 수 있느냐고 딱 묻는 에 무엇 때문에 이 안 된다 하는 무엇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면 그 무엇 때문에 죽음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죽음을 할 수 있어야 좋겠어요? 아니면 해야 좋겠어요? 죽음은 이미 왔으니까, 갈 수 밖에 없으니까, 내가 죽음을 하는 것이 길입니다. 그러면 하고 있으면 어찌 하겠어요? 3 에는 죽게 되어 있는데 3 동안에 안 죽어, 안 죽어, 안 죽어, 안 죽어, 하게 되면 안 죽어, 안 죽어, 안 죽어 하는 그 가 볼품도 아니고 안 죽어, 안 죽어, 안 죽어 하는 그 에너지가 그 혼 속에 한 스트레스로 되어서 다음 에 훌륭한 에 태어나고 싶더라도 그 한 어리석음, , 한 스트레스 이것 때문에 좋은 에 태어나지를 못하는 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은 입니다. 이 되게 하려면 무엇 때문에 내가 못 죽겠다 할 때 그 무엇에 해서 을 잘 해서 내 속에서 그것을 시켜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그 무엇을 하는 을 죽음 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죽음 은 왜 한다고 했지요? 죽음 을 하면 이 막 떠오른다고 그랬지요? 그 떠오르는 만 잘 하게 되면 내 속에 있는 는 다 됩니다. 그래서 해 버리기 해서는 해야 되고, 했으면 그것을 치워버려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내 속에 있는 하기 해서 죽음 이라고 하는 것을 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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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죽음 을 할 때 여러들이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어요? 그것은 죽음 을 할 때의 입니다. . 이 날수록 좋다는 말입니다. 이빨 쑤셔가면서 죽음 하자 하니까 그래 죽음 또 해보자. 그래 죽음 온다고 하자. 내가 할 수 있냐. 잘 안 되네 어째서…… 이런 의 에너지로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로 죽음이 왔다고 보고 이 죽음을 할 수 있겠느냐를 물어야 됩니다. 흑백으로 어느 선을 넘어서야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면 좀 더 진지하게, 좀 더 진정하게, 아니 로 죽음이 바로 와있을 수도 있어요. 여러들이 1분 후까지 살아있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그런데 1분 후에 죽음이 안 옵니다. 죽음이 1분 후에 안 와서 또 살아지고, 또 살아지고, 또 살아지고, 그러니까 한 500년 더 살 것 같은 그런 감이 들지요? , 이것이 1 입니다.

자, 로 죽음이 앞에 와서 가자 한다고 딱 을 해보십시오. 내가 을 할 때 가장 진지하게 하는 이 죽음 입니다. 죽음 할 때 내가 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그래질까요? 다른 은 그냥 하면 됩니다. 그런데 죽음 같은 는 어때요? 우리 모두 하자고 하면서 마스터가 죽음 히 하고 있으면서 들 죽음 해봐 한다면 그 에너지가 되겠어요? 안됩니다. 히 죽음 같은 는. 그런데 내 속에서는 짜, 말로 죽음이 왔다고 보자 하면서 할 때 를 높이는 겁니다. 죽음이 와서 가자고 할 때 참말로 죽은 것처럼 가는 것입니다. 이지요. 딱 을 해봅니다. 그 때 무엇 때문에 잘 못 가겠어 하는 그 무엇이 걸려드느냐를 봅니다. 여러들은 죽음이 가자 하면 갑시다 하면서 잘 가집니까, 아니면 뭔가 남아 있습니까. 어디 해봅시다. 자, 죽음이 앞에 왔습니다. 와서 여러에게 갑시다, 그럽니다.

그 때 히 따라가지느냐 아니면 그 무엇 때문에 얼른 안 되느냐 하는 겁니다. 그 무엇인가가 잡힌다면 잡히는 그것을 딱 잡아 보십시오. 잡히는 것 없으면 죽음 이고 잡아 보십시오. 무엇이 걸립니까? …............ 이 이면 잡혔지요? 어디, 나는 안 잡히고 쓰윽 가지네요 하시는 , 손 들어봅시다. 한 , 두 , 셋, 넷, 다섯, 여섯. 여섯 분을 믿어야 될 것인가. 믿어야지요. 나는 해보니까요 내일이면 이 을 마치는데 가자고 하면? 가자고 하면은 조금 그렇기는 하다 하고 살짝 걸려들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 님 계시고 열매님도 계시잖아요. “아이고, 스님 죽어버렸다고 하더라. 참말로 어떤 도 있지만 한便 시원하기도 하다. 우리끼리 해서 여기에 님도 계시고 열매님도 계시니까 두 에 가위바위보로 이긴 사람보고 스님 하던 것 이어서 하시게 하자.” 이러면 훨씬 으로 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전혀 노 프러블럼이었습니다. 이것이 살짝 걸렸다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이것이 걸릴 수 있겠구나 하고 그쪽에 머물러 보니까 내 의 소리가 무어라 했겠습니까? “아. 님 계시고 열매님 계시지 않아.” 하는 이 딱 있으니까 안 걸렸습니다. 그리고 설혹 두 이 안 계신다고 하더라도 여러들, 아따~ 나, 삼 일 동안 묶여있을 판이었는데 하루 벌었다, 하면서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할 수도 있어요. 아무튼 손 드신 들은 드립니다. 그건 좋은 일이구요.

그래서 합니다. 이 나야 걸리는 것도 더 히 잡힙니다. 그래서1 입니다. 죽음 했다 하게 되면 다섯 가지는 으로 서있어야 됩니다. 1 이고 2 은 직면입니다. 죽음이 가자고 했을 때 여러 속에서는 그 다음에 무엇이 따라오겠어요? 를 높여서 그래 저 죽음, 가자고 하는 죽음의 사자를 따라서 내가 간다고 할 때 무엇 무엇이 걸리는지 그 아이템들을 딱 딱 딱 정확하게 잡는 것입니다. 그것이 직면입니다. 직면은 걸리는 것을 딱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아 봐야 다섯 개 일 겁니다. 대체로 하나나 둘, 아니면 세 개? 여러들은 평소에 죽음 하면 몇 가지 가 잡혀요? 다섯 개 이상 잡히는 사람은? 다섯 개 이하는? 그럴 겁니다. 다섯 개까지는 걸리지 않습니다. 그것을 직면해서 무엇, 무엇 하면서 다섯 개 가 잡혔습니다. 그러면 세 번째 할 일은 무엇이겠어요? 직면의 으로 되어 있고, 문장으로 되어 있어요. 이러이러하지 못해서 이지 않아, 하는 식과 같은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아이고, 내가 죽어버린다면 내가 모시고 있는 님이 완전히 불행해질지 모르겠는데, 이처럼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직면한 다음 3 은 무엇인가. 입니다. 이 문장들을 시켜야 됩니다.

어떻게 시킬까요? 아이고, 내가 팔십이 넘은 님을 모시고 있는데 내가 죽어버리면 그 님이 너무너무 비참해질 것 같아. 그러니 못 가겠어. 어머니 때문에 못 가겠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문장을 어떻게 을 시키지요? 그래 일차적으로는 이렇게 생각이 되지만 한 생각 더 돌려보면 엉뚱하게 횡재인 사건이 일어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는 내가 죽게 될 것 같으면 약간 치매기도 있고 해서 틀림없이 거리에 나가서 집을 못 찾고 어정대면서 아이고, 내 아들 어디 갔어? 이런 으로 거리의 할머니가 될 것이다. 그때 운 좋게도 스님을 만났어. 스님이 아니, 누구십니까? 하니까 아무개가 내 아들인데 아들놈이 어디 가서 안 온단 말이오, 하게 되면 아이고, 그 아들 죽어버렸소. 그러니깐 내가 대신 아들 노릇 해줄 테니까 내 절로 갑시다. 절에 가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시켰는데 어머니가 염불 들어가 한 통을 해서 그냥 에 확 가버렸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에 가실 분을 내가 모신다고 붙들고 있는 나머지 어머니 신세를 내가 망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죽을 바에야 그렇게 생각을 얼른얼른 해버려야지요. 또 이 그럴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해서 걸리는 문장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씩 될 때마다 그에 따라오는 느낌이 있습니다. 4 은 그 느낌을 느끼는 것입니다. 됨으로 해서 오는 느낌이 있습니다. 모든 감각 에는 그에 하는 느낌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딱 할 때 오는 감. 그 때 무엇인가 마음이 탁 놓여지는 . 그것에 걸려서 답답했던 마음이 되버리니까 딱 된 개운한 감. 개운하고 시원해지는 그 감. 그 감을 크게 하자면 감입니다.

그런데 여러들은 이라 하면 너무도 유별나게 생각합니다. 하려면 6년간은 해야 돼,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있어요. 그런데 도 있고 도 있고, 쏠쏠하고 자잘하고 미세한 들이 얼마든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을 유별나게 부처님의 보리수 하의 처럼만 생각하지 말아라 하는 겁니다. 그것은 아주 높은 수준, 이고, 잘잘한 , 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걸렸던 것이 되면 감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4 까지 되면 죽음 됩니다. 이것 됐고, 이것 됐고, 이것 됐고, 이것 OK, 이것 OK 하면 걸렸던 것 되어서 감으로, 개운해진 감으로 딱 느껴지게 되면 죽음 입니다. 이제 말로 죽음이 가자고 할 때 갈 수 있겠느냐. 응 갈 수 있겠어, 합니다. 그런데 이 걸리는 레파토리 중에 가 없어지는 것에 이 안 되서 못 가겠네요, 하는 걸림은 다 있을 것 같은데 중에 체크해 보면 그런 얘기를 안 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 그것 참 신기합니다. 죽음 자리에서 을 합니다. 죽음을 가로 막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런 대답은 안 나옵니다. 그러면 이 끊어지는 것에 한 무슨 마음은 없느냐 하면 그것은 별로랍니다. 그런 사람들 신기한데, 부터 같아요. 내 는 누구 때문에 어쩐다 그런 거 별로 없어요. 나에게 있어서 죽음 의 가장 인 것은 밖의 무엇 때문이 아니라 이 가 끊어지는 것에 한 억울함 같은 것, 끊어지는 것에 한 어떤 안 좋음, 이런 것이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아니 그런데 그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 끊어진다는 것에 한 무슨 여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 그것이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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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는 오직 그거 하나였어요. 은. 그러기 때문에 노릇을 해줘야 될 인데 그 자리까지도 팽개쳐버리고 갔잖아요.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는 것이고 얼른 이 안 되더라는 것이지 로 그렇다 하면 그 사람은 평소에 한 애착이 별로 없이 가볍게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어요. 그것을 나쁘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얼른 이 안 되어서 나는 그것에 너무도 잘 걸렸는데 은 안 걸리냐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의미가 하나 더 있어요. 죽음 을 하는 에 의미가 건져지게 됩니다. 죽음 안 되더라도 의미가 건져지는 것입니다. 그 의미가 쏠쏠하게 좋을 수가 있습니다. 그 의미 건지기 중에서 내가 관찰해본 중에 이었던 것은 “내가 짜 내 아무개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됐다” 하는 식입니다. “내가 내 말로 사랑하고 있구나.” 이런 말들이 막 나옵니다. 그러고 또 어떤 사람은 무슨 의미를 건졌느냐 하니까 “이제 말로 잘 살아봐야 되겠다” 합니다. 그렇게 늘 의미가 건져집니다. “내가 아무개 아무개한테 너무 잘못하고 까지 살아왔는데 말로 잘해줘야 되겠다.”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의미를 쏠쏠하게 건집니다. 그래서 5번 인 의미 건지기까지가 죽음 입니다. 의미까지 건질 것 같으면 죽음 괜찮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서 죽음 이 어느 가 됐다 하면 이 사슬 중의 가 쉬게 됩니다. 또 으로 말하면 이 놀라웁게 극소화됩니다. 좋지요?

그리고 죽음 을 거듭 하다가 보면 버전이 자꾸 바뀝니다. 그리고 처음에 무엇 때문에 못 죽는다, 하는 이런 것은 죽음 에나 뭣 때문에, 레파토리 1, 2, 3 때문이라고 하지 죽음 이 잘 되게 되면, 는 걸릴 것 하나도 없어서 참으로 좋습니다. 죽음 을 하게 되면 난 참 합니다. 죽음 앞에다 하다는 말까지 붙이면 여러들이 을 할런지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온다, 그래요. 죽음이 온다. 그리곤 간다, 그래 봅니다. 간다, 할 때 걸린 것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죽음 을 가장 히 하고 동그라미를 치는 는 온다, 간다, 걸림 없다. 그렇게 하고 동그라미를 칩니다. 온다, 간다, 걸림 없다. 그렇게도 죽음 되어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죽음의 없지 않아요? 어디에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있느냐. 이, 변화가 있을 뿐이지 어디에 죽음이 있느냐, 그러게 되면 죽음 자체가 도 안 됩니다. 그래서 죽음 하게 되면 변화가 있을 뿐 죽음이 어디에 있느냐, 그러면 깨끗해져 버리거든요. 그리고 동그라미 칩니다. 좋지 않아요?

이것 에는 이런 것도 있었어요. 히말라야의 참새 한 마리가 겨울에 추우니까 춥다, 춥다, 춥다 하면서 똑 떨어져서 죽어. 참새 한 마리가 똑 떨어지는데 그 옆에 달랑달랑 붙어있던 가 춥다, 춥다, 춥다 하고 똑 떨어지는 걸 해 봅니다. 그래서 새 한 마리가 똑 떨어지는 걸 해보고, 한 마리가 똑 떨어지는 것을 해보면서 이 둘 사이의 가 하나도 안 느껴지는 좋음. 가 하나도 안 느껴지면서 그래 새 한 마리 떨어진 것이나 한 마리 떨어진 것이 무슨 가 있느냐 하고 볼 때 깨끗하게 가 없이 그냥 로 느껴져요. 그게 참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또 동그라미 칩니다. 어떤 땐 또 낙엽 하나가 또로로록 떨어졌어. 가 또로로록 떨어졌어. 무슨 가 있느냐. 그러니까 멀리 떼어놓고 건너다보면 그 입니다.

에는 또 어떻게 했는지 말하지요. 딱 죽었어. 죽었는데, 죽어서 하루인가 이틀인가 있었는데 아니 70억 인류가 다 내 앞에 와서 웅성거리고 있는 거예요. 아니 너 말이야, 저쪽 에 있어야 되는데 왜 네가 여기에 있냐 했더니 나 80 살고 왔어요, 나 100세 살고 왔어요, 막 이러는 겁니다. 내가 죽어서 며칠도 안 되고 몇 도 안 됐는데, 그냥 70억 인류가 다 와서 함께 내 앞에 웅성거리고 있다니까. 아, 그 을 해보니까 죽는다는 게 뭐 한 일이냐 하게 됩니다.

죽음 버전이 이렇게 막 바뀝니다. 그런데 가장 좋은 것은 죽음 은 없지 않아요. 그리고 요새 해보는 죽음 도 재미있습니다. 죽음이 온다고 하는 대신 이미 보름 전에 죽어버렸다고 합니다. 보름 전에 죽어가지고 죽음 에 동그라미 치려고하면 딱 죽음 됩니다 그러면 이미 보름 전에 죽었어. 나는 화장터에서 화장을 해서, 화상 그냥 화장 막 해서 태워가지고 싹 없애버렸어. 스님 영정이 성륜사에 가 있어. 49제 해준다고. 그런데 나는 너무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 49제 해준다고 찍어 놔두었네, 이러고 돌아다니면서 재미를 보는 거야. 그러면서 아이고~ 너그들, 그 고단한 을 언제 다 살고 올래. 나는 이렇게 좋다~~ 하는 겁니다. 이 죽음 은 메뉴가 그렇게 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들, 죽음 을 늘 해보세요. 해보면 처음에는 심각하고 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시대가 지나가게 되면 대단히 적이 됩니다. 이. 으로 죽음을 관조하는 재미 속에 있게 됩니다. 자, 아무튼 한은 죽음이 온다, 이 말도 참 맞지 않는 소리입니다. 한 번은 온다. 한은 죽음이 오지 않아, 이렇게 말을 했다 해봅시다. 그 말하는 그 사람은 죽음이 히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심각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 들은 죽음이 심각하다고 하면 나에게 할 일이 많구나, 그렇게 여기시고 어서 죽음 이 마치 숨 쉬는 것과 같이 스러운 에 올라가시도록 하십시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언제 죽어도, 사라져도 상관없는 마음으로 가볍게 사는 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