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11 講 죽음 暝想

安寧안녕하세요.

前生전생에 보고 또 보네요. 이 時間工夫主題 시간 공부주제는 죽음 暝想명상입니다. 于先우선 죽음 暝想명상煩惱構造 번뇌구조整理정이해 봅시다. 자, 槪念以前개념이전입니다. 槪念以前개 념이전이라 하면 무엇으로 느껴집니까? 이것이 極 樂극락이고, 解脫해탈 이고, 無爲무위이고 이고 그리고 理想鄕이 상향입니다. 理想 鄕이상향에서 첫 墜落추락實體思考실체사고이고 다음으로 바로 이어서 銅錢동전兩面양면 처럼 價値思考 가치사고展開전개됩니다. 이어서 價値附與가치부여를 한 만큼 欲 求욕구가 일어나고, 欲求욕구하게 되면 所有소유하고자 하는데 마음대로 안 되니까 憤怒분 노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欲求욕구, 憤怒분노, 欲求욕구 , 憤怒분노를 수없이 經驗경험을 하면서 또 하나의 강력한 信念신념인 불만 思考사고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實體思考실 체사고, 價値思考가치사고, 不滿思考불 만사고思 考사고들이 옳은 思考사고냐 하면은 全部전부 잘못된 思考사고예요.

本來實體본래실체가 없는데 實體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니 어리석음이요, 本來본래 이것은 그냥 이것일 뿐인데 얼마짜리라고 價値가치附與부여하는 價値思考가치 사고자체가 맞지 않으니까 이것도 어리석음이요, 只今 지금 넘치는 幸福행복 속에 있는 인데 불만을 하고 있으니 不滿思 考불만사고도 어리석음이어서 이것이 어리석을 입니다. 欲 求욕구 이고 憤怒분노이라고 합니다. 幸福公式행복공식을 보면 [幸 福행복 = 所有소유 / 欲求욕구]입니다. 幸福公式행복공식 속의 이 欲求 욕구煩惱構造번뇌구조 속의 이 欲求욕구입니다. 이 欲求욕구의 뿌리에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또 이것의 結果결과憤怒분노가 바로 따라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幸福公式행복공식欲求욕구欲求욕구 代表槪念 대표개념으로 썼을 뿐이지 이 欲求욕구를 잘 들여다보면 이미 어리석은 前提전제가 되고, 또 바로 憤怒분 노前提전제됩니다. 憤怒분노가 바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欲求욕구는 바로 , , 입니다. 이 , , 程度정도만큼 幸福행복 은 누리기가 어렵다 그겁니다. , , , 最小化 최소화幸福행복을, 幸福解脫행복해탈決定결 정한다는 말입니다.

죽음 暝想명상이라고 하는 것은 煩惱構造번뇌 구조貪部 分탐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幸福公式행복 공식에서의 欲求 部分욕구부분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을 , , 라고 한다면 , , 部分부분집합인 이 을 다루는 것이 죽음 暝想명상입니다. 앞에서 說明설명 했듯이 내가 이 瞬間순간에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受容수용할 수 있느냐고 딱 묻는 瞬間순간에 무엇 때문에 受容 수용이 안 된다 하는 무엇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면 그 무엇 때문에 죽음을 受容수용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죽음을 受容수용할 수 있어야 좋겠어요? 아니면 拒否거부 해야 좋겠어요? 죽음은 이미 왔으니까, 갈 수 밖에 없으니까, 내가 죽음을 受容수용하는 것이 길입니다. 그러면 拒否거부 하고 있으면 어찌 하겠어요? 只今지금 3 秒後초후에는 죽게 되어 있는데 3 동안에 안 죽어, 안 죽어, 안 죽어, 안 죽어, 하게 되면 안 죽어, 안 죽어, 안 죽어 하는 그 自體자체가 볼품도 아니고 안 죽어, 안 죽어, 안 죽어 하는 그 에너지가 그 혼 속에 强烈강렬한 스트레스로 되어서 다음 世上 세상에 훌륭한 家庭가정에 태어나고 싶더라도 그 强烈강렬한 어리석음, 强烈 강렬欲求욕구, 熾烈치렬한 스트레스 이것 때문에 좋은 家庭가정에 태어나지를 못하는 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은 受容수용 입니다. 受容수용이 되게 하려면 무엇 때문에 내가 못 죽겠다 할 때 그 무엇에 해서 暝想명상을 잘 해서 내 속에서 그것을 放下방하시켜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그 무엇을 整理 정이하는 心理的심이적過程과정을 죽음 暝想명상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죽음 暝想명상은 왜 한다고 했지요? 죽음 暝想명상을 하면 欲求內容욕구 내용이 막 떠오른다고 그랬지요? 그 떠오르는 欲求 內容욕구내용만 잘 整理정이하게 되면 내 속에 있는 重大중대欲求욕구는 다 解決해결됩니다. 그래서 欲求욕구淸掃청소해 버리기 해서는 欲求 욕구發見발견해야 되고, 發見발견했으면 그것을 치워버려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내 속에 있는 欲求念體욕구념체淨化정 화하기 해서 죽음 暝想명상 이라고 하는 것을 道具도구로 씁니다.

illust_ref_11-2-48

자, 죽음 暝想명상을 할 때 여러들이 第一留念 제일유념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어요? 그것은 죽음 暝想명상을 할 때의 眞正性진정성입니다. 眞正性진정 성. 實感실감이 날수록 좋다는 말입니다. 이빨 쑤셔가면서 죽음 暝想명상하자 하니까 그래 죽음 暝想명상또 해보자. 그래 죽음 온다고 하자. 내가 受容수용할 수 있냐. 잘 안 되네 어째서…… 이런 의 에너지로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로 죽음이 只今지금 왔다고 보고 이 죽음을 受容수용할 수 있겠느냐를 물어야 됩니다. 흑백으로 어느 선을 넘어서야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可能가능하면 좀 더 진지하게, 좀 더 진정하게, 아니 實際실제로 죽음이 바로 와있을 수도 있어요. 여러들이 1분 후까지 살아있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그런데 1분 후에 죽음이 안 옵니다. 죽음이 1분 후에 안 와서 또 살아지고, 또 살아지고, 또 살아지고, 그러니까 한 500년 더 살 것 같은 그런 감이 들지요? 左右之間實感좌우지간실감, 이것이 留念 點유념점1 입니다.

자, 實際실제로 죽음이 앞에 와서 가자 한다고 딱 想像상상을 해보십시오. 내가 暝想명상을 할 때 가장 진지하게 하는 暝想명상이 죽음 暝想명상 입니다. 죽음 暝想명상할 때 내가 第一森嚴제일삼엄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그래질까요? 다른 暝想명상은 그냥 하면 됩니다. 그런데 죽음 暝想명 상같은 境遇경우는 어때요? 우리 모두 하자고 하면서 마스터가 죽음 暝想명상適當적당히 하고 있으면서 當身당신들 죽음 暝想명상해봐 한다면 그 에너지가 通過통과 되겠어요? 안됩니다. 히 죽음 暝想명상같은 境遇경우는. 그런데 내 속에서는 짜, 말로 죽음이 왔다고 보자 하면서 暝想명상할 때 實感度실감도를 높이는 겁니다. 죽음이 와서 가자고 할 때 참말로 죽은 것처럼 가는 것입니다. 勿論想像물론상 상이지요. 딱 想像상상을 해봅니다. 그 때 무엇 때문에 잘 못 가겠어 하는 그 무엇이 걸려드느냐를 봅니다. 여러들은 只今지금 죽음이 가자 하면 갑시다 하면서 잘 가집니까, 아니면 뭔가 남아 있습니까. 어디 只今지금番暫時번잠시 해봅시다. 자, 只今지금 죽음이 앞에 왔습니다. 와서 여러에게 갑시다, 그럽니다.

그 때 順順순순히 따라가지느냐 아니면 그 무엇 때문에 얼른 안 되느냐 하는 겁니다. 그 무엇인가가 잡힌다면 잡히는 그것을 딱 잡아 보십시오. 잡히는 것 없으면 죽음 暝想完了명상완 료이고 只今지금 잡아 보십시오. 무엇이 걸립니까? …............ 이程度時間정도시간이면 잡혔지요? 어디, 나는 안 잡히고 쓰윽 가지네요 하시는 , 손 들어봅시다. 한 , 두 , 셋, 넷, 다섯, 여섯. 여섯 분을 믿어야 될 것인가. 믿어야지요. 나는 方今방금 해보니까요 내일이면 이 講義課程강 의과정을 마치는데 只今지금 가자고 하면? 只今지금 가자고 하면은 조금 그렇기는 하다 하고 살짝 걸려들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 無等山무등 산님 계시고 열매님도 계시잖아요. “아이고, 龍陀용타스님 죽어버렸다고 하더라. 참말로 어떤 遺憾유감도 있지만 한便 시원하기도 하다. 우리끼리 協議협의해서 여기에 無等山무등산님도 계시고 열매님도 계시니까 두 分中분중에 가위바위보로 이긴 사람보고 龍陀용타스님 하던 것 이어서 하시게 하자.” 이러면 훨씬 新鮮신선局面轉換 국면전환으로 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전혀 노 프러블럼이었습니다. 이것이 살짝 걸렸다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이것이 걸릴 수 있겠구나 하고 그쪽에 머물러 보니까 내 智慧지 혜의 소리가 무어라 했겠습니까? “아. 無等山무등 산님 계시고 열매님 계시지 않아.” 하는 이 딱 있으니까 안 걸렸습니다. 그리고 설혹 두 이 안 계신다고 하더라도 여러들, 아따~ 나, 삼 일 동안 묶여있을 판이었는데 하루 벌었다, 하면서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할 수도 있어요. 아무튼 方今방금 손 드신 들은 祝賀축하 드립니다. 그건 좋은 일이구요.

그래서 實感실감重要중요합니다. 實感실감이 나야 걸리는 것도 더 鮮明선명히 잡힙니다. 그래서1 番留念點번유념점實感실감 입니다. 죽음 暝想명상했다 하게 되면 留念點유념점 다섯 가지는 機械 的기계적으로 서있어야 됩니다. 1 實感실 감이고 2 番留念點번유념점은 직면입니다. 只今 지금 죽음이 가자고 했을 때 여러 속에서는 그 다음에 무엇이 따라오겠어요? 實感度실 감도를 높여서 그래 只今지금 저 죽음, 가자고 하는 죽음의 사자를 따라서 내가 간다고 할 때 무엇 무엇이 걸리는지 그 아이템들을 딱 딱 딱 정확하게 잡는 것입니다. 그것이 직면입니다. 직면은 걸리는 것을 딱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아 봐야 다섯 개程度정도 일 겁니다. 대체로 하나나 둘, 아니면 세 개? 여러들은 평소에 죽음 暝想명상하면 몇 가지程度정도 가 잡혀요? 다섯 개 이상 잡히는 사람은? 다섯 개 이하는? 그럴 겁니다. 다섯 개까지는 걸리지 않습니다. 그것을 직면해서 무엇, 무엇 하면서 다섯 개 程度정도가 잡혔습니다. 그러면 세 번째 할 일은 무엇이겠어요? 직면의 內容내용全部槪念전부개 념으로 되어 있고, 문장으로 되어 있어요. 이러이러하지 못해서 遺憾유감이지 않아, 하는 식과 같은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아이고, 내가 죽어버린다면 내가 只今지 금 모시고 있는 老母노모님이 완전히 불행해질지 모르겠는데, 이처럼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직면한 다음 3 番留念點번유념점은 무엇인가. 轉換 전환입니다. 이 문장들을 轉換전환시켜야 됩니다.

어떻게 轉換전환시킬까요? 아이고, 내가 팔십이 넘은 老母노모님을 모시고 있는데 내가 죽어버리면 그 老母노모님이 너무너무 비참해질 것 같아. 그러니 못 가겠어. 어머니 때문에 못 가겠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문장을 어떻게 轉換전환을 시키지요? 그래 일차적으로는 이렇게 생각이 되지만 한 생각 더 돌려보면 엉뚱하게 횡재인 사건이 일어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는 내가 죽게 될 것 같으면 약간 치매기도 있고 해서 틀림없이 거리에 나가서 집을 못 찾고 어정대면서 아이고, 내 아들 어디 갔어? 이런 으로 거리의 할머니가 될 것이다. 그때 운 좋게도 龍 陀용타스님을 만났어. 龍陀용타스님이 아니, 누구십니까? 하니까 아무개가 내 아들인데 아들놈이 어디 가서 안 온단 말이오, 하게 되면 아이고, 그 아들 죽어버렸소. 그러니깐 내가 대신 아들 노릇 해줄 테니까 내 절로 갑시다. 절에 가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시켰는데 어머니가 염불 三昧삼매들어가 한 통을 해서 그냥 極樂극락에 확 가버렸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極樂극락에 가실 분을 내가 모신다고 붙들고 있는 나머지 어머니 신세를 내가 망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을 轉換전환하는 것입니다. 죽을 바에야 그렇게 생각을 얼른얼른 轉換 전환 해버려야지요. 또 事實사실이 그럴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해서 걸리는 문장을 轉換전환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씩 轉換전환될 때마다 그에 따라오는 느낌이 있습니다. 4 番留念點번유념점은 그 느낌을 느끼는 것입니다. 轉換전환됨으로 해서 오는 느낌이 있습니다. 모든 감각 認知過程인지과정에는 그에 相 應상응하는 느낌이 隨伴수반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딱 轉換전환할 때 오는 解脫해 탈감. 그 때 무엇인가 마음이 탁 놓여지는 . 그것에 걸려서 답답했던 마음이 轉換전환되버리니까 딱 解決해 결된 개운한 감. 개운하고 시원해지는 그 감. 그 감을 크게 表現표현하자면 解脫해탈감입니다.

그런데 여러들은 解脫해탈이라 하면 너무도 유별나게 생각합니다. 解脫해탈 하려면 一旦일단 6년간은 苦行고행해야 돼, 이렇게 생각합니다. 解脫해 탈大解脫 대해탈이 있어요. 그런데 中解脫중해탈도 있고 小解脫소해탈도 있고, 쏠쏠하고 자잘하고 미세한 解脫해탈들이 얼마든지 있는 겁니다. 그래서 解脫槪念해탈개념을 유별나게 부처님의 보리수 하의 大覺대각처럼만 생각하지 말아라 하는 겁니다. 그것은 아주 높은 수준, 大覺대 각 이고, 잘잘한 中覺중각, 小覺소각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걸렸던 것이 轉換전환되면 解脫해탈감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4 까지 되면 죽음 暝想명상完了 완료됩니다. 이것 轉換전환됐고, 이것 轉換전환됐고, 이것 轉換전환됐고, 이것 OK, 이것 OK 하면 걸렸던 것 全體전체 轉換전환되어서 解脫해탈감으로, 개운해진 감으로 딱 느껴지게 되면 죽음 暝想명상 完了완료입니다. 이제 말로 죽음이 가자고 할 때 갈 수 있겠느냐. 응 갈 수 있겠어, 합니다. 그런데 이 걸리는 레파토리 중에 生命自體생명자체가 없어지는 것에 喪失感受容상실감수용이 안 되서 못 가겠네요, 하는 걸림은 다 있을 것 같은데 暝 想명상중에 체크해 보면 그런 얘기를 안 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 그것 참 신기합니다. 죽음 暝想명상자리에서 質問질문을 합니다. 죽음을 가로 막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런 대답은 안 나옵니다. 그러면 當身生命당신생명이 끊어지는 것에 한 무슨 마음은 없느냐 하면 그것은 별로랍니다. 그런 사람들 신기한데, 前生전생부터 道人도 인같아요. 내 境遇경우는 누구 때문에 어쩐다 그런 거 별로 없어요. 나에게 있어서 죽음 暝想명상 의 가장 決定的결 정적인 것은 밖의 무엇 때문이 아니라 이 生命自體생 명자체가 끊어지는 것에 한 억울함 같은 것, 끊어지는 것에 한 어떤 안 좋음, 이런 것이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아니 그런데 그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生命생명이 끊어진다는 것에 한 무슨 여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 그것이 있어야지.

illust_ref_11

석가모니는 오직 그거 하나였어요. 事實사실은. 그러기 때문에 自己자기 노릇을 해줘야 될 狀況상황인데 그 자리까지도 팽개쳐버리고 갔잖아요. 左右之間좌 우지간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는 것이고 얼른 共感공감 이 안 되더라는 것이지 實際실 제로 그렇다 하면 그 사람은 평소에 自己生命자기생명한 애착이 별로 없이 가볍게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어요. 그것을 나쁘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얼른 共感공감 이 안 되어서 나는 그것에 너무도 잘 걸렸는데 當身당신은 안 걸리냐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의미가 하나 더 있어요. 죽음 暝想명상을 하는 過程과정에 의미가 건져지게 됩니다. 죽음 暝想명상完了완료 안 되더라도 의미가 건져지는 것입니다. 그 의미가 쏠쏠하게 좋을 수가 있습니다. 그 의미 건지기 중에서 내가 관찰해본 중에 印象的인상적이었던 것은 “내가 짜 내 아무개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됐다” 하는 식입니다. “내가 내 家庭가 정말로 사랑하고 있구나.” 이런 말들이 막 나옵니다. 그러고 또 어떤 사람은 무슨 의미를 건졌느냐 하니까 “이제 말로 잘 살아봐야 되겠다” 합니다. 그렇게 늘 의미가 건져집니다. “내가 아무개 아무개한테 너무 잘못하고 只今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말로 잘해줘야 되겠다.”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의미를 쏠쏠하게 건집니다. 그래서 5번 留念點유념점인 의미 건지기까지가 죽음 暝想명상입니다. 의미까지 건질 것 같으면 죽음 暝想명상괜찮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서 죽음 暝想명상 이 어느程度完了정도완료가 됐다 하면 이 煩惱構造번뇌구조사슬 중의 欲求 욕구가 쉬게 됩니다. 또 幸福公式행복공식으로 말하면 欲求 部分욕구부분이 놀라웁게 극소화됩니다. 좋지요?

그리고 죽음 暝想명상을 거듭 하다가 보면 버전이 자꾸 바뀝니다. 그리고 처음에 무엇 때문에 못 죽는다, 하는 이런 것은 죽음 暝想初期명상초 기에나 뭣 때문에, 레파토리 1, 2, 3 때문이라고 하지 죽음 暝想명상이 잘 되게 되면, 只今지금境遇경우는 걸릴 것 하나도 없어서 참으로 좋습니다. 죽음 暝想명상 을 하게 되면 난 참 幸福행복합니다. 죽음 앞에다 幸福행 복하다는 말까지 붙이면 여러들이 共感공감 을 할런지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온다, 그래요. 죽음이 온다. 그리곤 간다, 그래 봅니다. 간다, 할 때 걸린 것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죽음 暝想명상을 가장 簡單간단히 하고 동그라미를 치는 境遇경우는 온다, 간다, 걸림 없다. 그렇게 하고 동그라미를 칩니다. 온다, 간다, 걸림 없다. 그렇게도 죽음 暝想명상發展발전되어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죽음의 主體주체本來본래 없지 않아요? 어디에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있느냐. 無常무상이, 변화가 있을 뿐이지 어디에 죽음이 있느냐, 그러게 되면 죽음 暝想명상자체가 暝想主題명상주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죽음 暝想명상하게 되면 변화가 있을 뿐 죽음이 어디에 있느냐, 그러면 깨끗해져 버리거든요. 그리고 동그라미 칩니다. 좋지 않아요?

이것 以前이전에는 이런 것도 있었어요. 히말라야의 참새 한 마리가 겨울에 추우니까 춥다, 춥다, 춥다 하면서 똑 떨어져서 죽어. 참새 한 마리가 똑 떨어지는데 그 옆에 달랑달랑 붙어있던 龍陀용타가 춥다, 춥다, 춥다 하고 똑 떨어지는 걸 想像상상해 봅니다. 그래서 새 한 마리가 똑 떨어지는 걸 想像상상해보고, 龍陀용타한 마리가 똑 떨어지는 것을 想像상상해보면서 이 둘 사이의 差異차 이가 하나도 안 느껴지는 좋음. 差異차이가 하나도 안 느껴지면서 그래 새 한 마리 떨어진 것이나 龍陀용타한 마리 떨어진 것이 무슨 差異차이가 있느냐 하고 볼 때 깨끗하게 差異차이가 없이 그냥 同價동가로 느껴져요. 그게 참 氣分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또 동그라미 칩니다. 어떤 땐 또 낙엽 하나가 또로로록 떨어졌어. 龍陀용타가 또로로록 떨어졌어. 무슨 差異차이가 있느냐. 그러니까 멀리 떼어놓고 건너다보면 그 自體자체 解脫해탈입니다.

以前이전에는 또 어떻게 했는지 말하지요. 딱 죽었어. 죽었는데, 죽어서 하루인가 이틀인가 있었는데 아니 70억 인류가 다 내 앞에 와서 웅성거리고 있는 거예요. 아니 너 말이야, 저쪽 地球지구에 있어야 되는데 왜 네가 여기에 있냐 했더니 나 80 살고 왔어요, 나 100세 살고 왔어요, 막 이러는 겁니다. 내가 죽어서 며칠도 안 되고 몇 時間시간도 안 됐는데, 그냥 70억 인류가 다 와서 함께 내 앞에 웅성거리고 있다니까. 아, 그 想像상 상을 해보니까 죽는다는 게 뭐 特別특별한 일이냐 하게 됩니다.

죽음 버전이 이렇게 막 바뀝니다. 그런데 가장 좋은 것은 죽음 自體자체事實사 실은 없지 않아요. 그리고 요새 해보는 죽음 暝想명상 도 재미있습니다. 只今지금 죽음이 온다고 하는 대신 이미 보름 전에 죽어버렸다고 想像상상합니다. 보름 전에 죽어가지고 죽음 暝想명상에 동그라미 치려고하면 딱 죽음 暝想명상始作시작됩니다 그러면 이미 보름 전에 죽었어. 나는 화장터에서 화장을 해서, 龍陀용타화상 그냥 화장 막 해서 태워가지고 싹 없애버렸어. 龍陀용타스님 영정이 성륜사에 가 있어. 49제 해준다고. 그런데 나는 너무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 49제 해준다고 寫眞사진 찍어 놔두었네, 이러고 돌아다니면서 재미를 보는 거야. 그러면서 아이고~ 너그들, 그 고단한 人生인생을 언제 다 살고 올래. 나는 이렇게 좋다~~ 하는 겁니다. 이 죽음 暝想명 상은 메뉴가 그렇게 多樣다양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들, 죽음 暝想명상을 늘 해보세요. 해보면 처음에는 심각하고 熾烈치렬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熾烈치렬 시대가 지나가게 되면 대단히 藝術예술적이 됩니다. 藝術예술이. 藝術的예술적으로 죽음을 관조하는 재미 속에 있게 됩니다. 자, 아무튼 한은 죽음이 온다, 이 말도 참 맞지 않는 소리입니다. 한 번은 온다. 한은 죽음이 오지 않아, 이렇게 말을 했다 해봅시다. 그 말하는 그 사람은 죽음이 相當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심각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 들은 죽음이 심각하다고 하면 나에게 할 일이 많구나, 그렇게 여기시고 어서 죽음 暝想명상이 마치 숨 쉬는 것과 같이 自然자연스러운 境地경지에 올라가시도록 하십시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언제 죽어도, 사라져도 상관없는 마음으로 가볍게 사는 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感謝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