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8 講 修心 實踐 (1) 主波羅蜜

安寧안녕하세요. 工夫공부할 만 하지요? 이 時間工夫시간공부는 여러 들이 갑자기 월반해 버린 것처럼 最高工夫主題최고공부주 제를 가지고 工夫공부하려고 합니다.

頓忘돈망이라고 하면 군침이 나옵니까? 여기엔 頓忘 돈망파지자들도 꽤 앉아 있고 그러신데 頓忘돈망파지자 분에게 한 번 묻겠습니다. 頓忘돈망하면 딱 어떤 감이 듭니까? 이런 때는 自己자기가 어느 程度頓忘정도 돈망에 순숙되어 있는가를 체크해 볼 수 있는 좋은 時間시간입니다. “이 瞬間순간 어떠세요?” 와 똑같은 말입니다. 이 瞬間순간 어떠세요, 라고 했을 때 頓忘돈망파지자라 하면 이 瞬間순간에 바로 頓忘돈망을 딱 經驗경험해야 됩니다. 그런데 頓忘돈망을 파지했다고는 하나 만만치 않아서 다시 精神정신 차리고 속에서 막 어어어 하면서 워밍업을 한 해야 될 狀況상황 일 수도 있습니다. 그 워밍업을 평소에 充分충분히 해 두었으면 옆구리를 찔렀을 때 精神정신 차리고 허둥댈 必要필요 없이 그냥 “이렇습니다” 하고 딱 내놓을 수가 있습니다. 이 瞬間순간 어떠세요, 하면 頓忘돈망 파지자는 이것입니다 하고 내놓는 이것이 완벽한 OK이어야 합니다.

자, 修心實踐수심실천으로 들어갑니다. 修心實踐 수심실천 1 이 무엇이겠습니까? 主波羅蜜주파라밀이겠지요. 主波羅蜜주파 라밀이라고 하면 다섯 손가락 중에 엄主波羅蜜 주파라밀인데 槪念以前개념이전을 관조하는 心理過程심이과정,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겁니다. 槪念以前개념이전意識狀態의식상 태를 느끼는 過程과정뭐 이렇게 表現표현해도 됩니다. 그렇다면 槪念以前개념 이전을 파지 못 했다고 하면 내가 이것이다, 저것이다, 나다, 너다 라고 槪念개념 작용을 하기 以前이전意識의식상태가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와 같은 믿음, 그런 믿음부터 始作시작하는 것도 좋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同事 攝동사섭은 믿음을 强調강조하는 데는 아닙니다. 槪念以前개념이전을 바로 직접 이렇게 만지듯이 經驗경험을 해버려야 됩니다. 그러나 해도 해도 經驗경험이 안 돼는 境遇경 우가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于先우선 믿기라도 하라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只今지금 안내를 한 딱 받아 보십시오.

자, 그냥 있어보세요. 그냥 있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냥 있음을 좀 풀어서 表現표현하면 그냥 있는 意識의식상태를 意識의식함, 뭐 그렇게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냥 있음이라고 하는 것은 相當상당히 애매한 소리입니다. 그것에 좀 說明설명을 붙이면 더 선명해집니다. 그냥 있는 意識狀態의식상태를 이렇게 意 識의식하는 것입니다. 자, 釋迦牟尼석가무니를 떠올려 보십시오. 釋迦牟尼석가무니를 떠올릴 때에 여러 속에 하나님처럼 떠오르면 그건 釋迦牟 尼석가무니가 아니라 귀신이고 도깨비입니다. 釋迦牟尼석가 무니는 우리와 똑같은 存在존재입니다. 똑같은 存在존재인데 오직 差異차이가 하나 있다고 하면 釋迦牟尼석가 무니는 그냥 있는 存在존재, 그냥 있을 수 있는 存在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냥 있지를 못하고 어머니 생각, 아버지 생각, 이 생각 저 생각, 미운 놈, 고운 놈 다 나와서 막 북적되는 意識의식상태로 있게 되거든요. 그런 것은 그냥 있음이 아닙니다. 그냥 있을 수 있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聖者성자와 나의 差異차이를 보려고 해야 됩니다. 그 양반은 他心通타심통을 해가지고 相對方상대방 마음을 환히 알아 버리는 存在존재야 한다면 聖者성자를 도깨비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뭐 聖者성자라고 해서 他心通타 심통을 안 한다는 말, 못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聖 者성자를 논할 때 他心通等等타심통등등은 잣대가 못 되는 입니다. 釋迦牟尼석가무니와 나를 비교해 보십시오. 釋迦牟尼석가무니는 그냥 있어보자 해 놓고 그냥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들은 그냥 있어지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差異차이 극복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頓忘暝想 돈망명상입니다. 釋迦牟尼석가무니는 그냥 있는데 나는 그냥 있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只今지금 수습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겁니다. 무엇을 수습해야 될까요? 무엇을 해야 釋迦牟尼석가 무니가 그냥 있듯이 나도 그냥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될까요? 무엇을 해야 되겠냐 하면 속에 이 환히 보입니까? 그 이 환희 보이는 것 自體자체가 하나의 道位도위입니다. 이미 여러 들은 모두 自己자기 나름대로 속 소리로 답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同事攝동사섭현장에서는 頓忘돈망意識의식상태를 經驗 경험시키기 해서 문장 3가지를 提供제 공합니다. 문장 1은 《그냥 있는다》입니다. 문장 1을 접하면서 그냥 있는 것을 연습합니다. 그래, 이 程度정도면 그냥 있음이 되겠는데 하는 으로 自 己자기 체크를 하면서 工夫공부를 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頓忘돈망파지자들도 계시고 頓忘돈 망에 도전해 가는 들도 계시고 하는데 頓忘三觀돈 망삼관第 一觀제일관인 《그냥 있는다》 를 접했을 때 여러 들이 어떠하냐를 只今지금 보시라는 겁니다. 그냥 있는다. 음, 이것은 《그냥 있는다》 일까? 맞어. 이것이 《그냥 있는다》 겠지. 이렇게 되는가 보라는 것입니다. 제 2관, 두 번 째 문장입니다. 《 我空法空아공법공이니 안팎으로 關 心관심 갈 것 없다》라는 문장을 提供제공 합니다. 1987년을 기준으로 하면 25년간 頓忘돈망안내 버전을 발전시키는데 에너지를 써왔습니다. 그래서 나온 마지막 버전이 이 세 문장입니다. 이제 더 버전을 발달시킬 必要필요 없겠다고 자신해서 只今지금의 세 문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 문장이 나오는데 사반세기가 지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그 사반세기를 오면서 업그레이드 되어서 간편하고 쉽게 된 이 세 문장을 쥐고도 안 된다고 하면은 그것은 무엇일까 하게 됩니다. 도깨비일까? 사람일까? 사람이라면 될 것도 같은데 안 된다고 하면? 그러면 그것을 내일모레로 생각하지 말고 只今지금 해 보아라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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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해봅시다. 그냥 있는다. 我空法空아공법 공이니 안팎으로 關心관심 갈 것 없다. 第二觀제 이관第一 觀제일관에 살짝 보태 보십시오. 그러면 《그냥 있는다》가 더 확연해 질 것입니다. 頓忘三觀돈 망삼관이라고 하니까 2관, 3관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다》가 全部전부입니다. 第一觀제일관全部전부입니다. 그 1 관을 돕기 해서 2 관, 3 관을 붙여 놓았을 뿐입니다. 《그냥 있는다》로 全部전부라는 말입니다. 앞에서 무엇인가 수습이 덜 되었는데 조금 하다가 2 관이 붙으면 아, 그래야지 그래야지 하면서 안팎으로 무엇인가 淸掃청소하는 作業작업이 막 될 겁니다. 속에서도 밖에서도 무엇인가 걸리적거리고 나를 괴롭히는 것이 없어야 그냥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떠올라 버렸어. 어머니와 아옹다옹 하고 있다면 나는 어머니에게 저촉되고 있는 것이지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法空법공이다, 어머니 없다, 어머니 그냥 쓸어버리라, 하는 겁니다. 내 속에서도 어떤 自我자아의 여러 가지 念體념체들이 막 나를 들쑤시면서 괴롭힐 수가 있어요. 그것은 내 自我자아로부터 내가 저촉 당하고 있는 狀態 상태이지 그냥 있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我空아 공이다, 나 없다, 나 쓸어버려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있음이 되려면 안팎으로 딱 放下방하가 되어 버리는 意識狀 態의식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특이한 사람은 나 我空 法空아공법공않더라도 그냥 있음이 다 된다니까 하고 뻗대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그거 된다고 하니 祝賀축하한다. 그러나 거기다 이것까지 더 해봐라. 그럼 더 나을 것이다.” 합니다. 세 번 째 문장은 《그러하니 그냥 무장무애하게 깨어있는 것이 이 일물의 할일 全部전부이다》입니다. 처음에 그냥 있는다 하게 되면 발가벗은 狀態상태의 그냥 있음이 잘 안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 2 관이 보태집니다. 순수하게 그냥 있으려고 해도 무엇인가 검불이 덕지덕지 붙어서 我空法空아공 법공이니 안팎으로 關心관심 갈 것 없다고 해주니까 붙어 있던 검불이 딱 整理정이 되는 것이 經驗경험될 겁니다. 이렇게 속에서 내가 어떤 槪 念개념을 쓰느냐에 따라서 그 槪念개념相應상응하는 經驗경험 이 안으로 착 되고, 착 되고, 착 되어야, 그 섬세한 經驗경험經驗경험해야 내 意識의식이 민감하게 살아 있는 意識의식이 되는 겁니다. 산을 생각해 보라고 했는데 들을 생각한 듯 한 情緖정서가 흐른다? 이것은 내 自身 자신意識의식이 첨예하게 깨어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을 떠올려 봐라 하면 산을 떠올리는 느낌이 느껴지는 입니다. 산을 떠올려 보아라 했는데 들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情緖정 서가 흐른다면 工夫공부꾼으로 해서 둔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我空法空아공법 공이니 안팎으로 關心관심 갈 것 없다고까지 또박 또박 안내 해주었는데 멍하니 나는 그 말을 덧붙여도 별로 모르겠고 붙이지 않아도 모르겠다 식이라면 그만큼 내 意識의식이 덜 깨어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자, 그냥 있는다. 我空法空아공법공이니 안팎으로 關心 관심 갈 것 없다. 어때요? 더 개운해집니까? 제 3 관, 그러하니 무장무애하게…, 여기에서 ‘그러하니’라는 이 말은 무슨 뜻이지요? 我空法空아공법공이어서 안팎으로 關心관심 갈 것이 없으니 하는 말입니다. 그러하니 그냥 무장무애하게 깨어 있는 것이 이 일물의 할 일 全部전부이다. 이것이 무슨 말이지요? 그냥 깨어 있는 이 意識의 식이 안팎으로 걸림 없이 탁 트여 버려서 무장무애하게 宇宙 的우주적으로 확 열려져버린 意識狀態의식상태意識의식 經驗경험되어야 하겠지요. 왜? 하고, 해서 안팎으로 淸掃청소를 싹 해버리지 않았습니까?

너무 쉽게 傳達전달하니까 혹시 아닌 것 같은 감이 드십니까? 그러면 아닌 이것을 經驗 경험해 보십시오. 아닌 이것을 經驗경험 하고 經驗경험이 되는 것을 나한테 와서 점검을 받으십시오. 나하고 交流교류 라도 해 보고 당신은 認定인정 해준 것 같은데 나는 의미가 없는데요 하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버리면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은 龍陀 용타하고는 에 있어서 因緣인연이 안 맞는 겁니다. “나는 話頭화두영 안 맞아요. 나는 염불 해야 되겠어요” 한다면 그 사람은 話頭화두하고는 안 맞는 것입니다. 話頭화두 종장하고는 因緣인연이 안 맞은 겁니다. 그 사람은 염불 종장을 만나서 염불로 가면 됩니다. “나는 염불 보다는 話頭화두가 낫겠어요” 하면 그 사람은 염불 종장하고는 因緣인연이 안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염불 三昧삼 매를 하기 해서는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아미타불, 아미타불을 하루에 8 時間시간 씩 해서 천일 동안 하고 나한테 오라고 해라. 이程度정도로 숙제를 냅니다. 여러 들, 그 숙제 해내려면 어쩌겠어요? 숙제 해냈다면 그 사람은 굉장한 사람이고 천 명 중에 한 사람도 그 관문을 통과하지를 못하고 중간에 다 좌절해 버립니다. 話頭화두 . "이 뭐꼬? 어째서 板齒生毛판치생모 라고 했는고" 하는 話頭화두 를 들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어째서 板齒生毛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이 뭐꼬" 하면서 합니다. 그것을 1년 해도 뭣이 안 되고, 2년 해도 안 되고, 평생 해도 안 되서 나중에는 기름 參禪참선이 되어 빤질빤질해져서 되는 것도 같고 안 되는 것도 같고 그렇습니다. 당신의 행법은 무엇이오? 話頭화두입니다. 話頭화두는 무슨 話頭화두를 듭니까. oooo 듭니다. 그럼 實際실 제로 당신의 境地경지를 진솔하게 表現표현해 주시오. 그러면 어깨를 으쓱합니다. 이런 狀況상황입니다.

그런데 龍陀용타스님의 법은 대단히 理路整然이로 정연하고 누구라도 딱 만질 수 있게금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龍陀용타법이 아니라 釋迦牟尼석가무니법입니다. 釋迦牟尼석 가무니법이예요. 그 釋迦牟尼석가무니법을 21세기의 龍 陀용타가 살려내고 있습니다. 釋迦牟尼석가무니법이 只今지금 막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龍陀용타법을 듣다가 보니까 너무 쉬워요, 너무 쉬워. 그러니까 너무 쉬워서 問題문제가 되버린 겁니다. 무언가 좀 어려워야 될 텐데. 一週日일주일이라도 努力노력을 해야 무엇이 될 텐데 努力노력必要필요 없이 앉은 자리에서 다 解決해결 될 법을 알려줘 버리거든요. 그러니까 아니, 只今지금解 決해결되버리는데 이것이 긴가 아닌가 그럽니다. 그럼 只今지금 바로 解決해결되버리면 只 今지금 바로 解決해결된 그것을 가지고 오너라 그겁니다. 解決해결됐는가 보자. 그러고 只今지금 바로 解決해결된 것이 가장 제대로라는 말입니다. 只今지금 바로 解決해결될 법을 내가 전한 것입니다. 자, 그냥 있는다. 그냥 있어 보세요. 我空法空아공법공이니 안팎으로 關心 관심 갈 것 없다가 되는가 보세요. 그러하니 무장무해하게 딱 깨어있는 意識의식經驗경험되는가 보세요. 이것이 진짜 됐다고 假定가정합시다. 그럼 이것이 되는 것 같은데 이것이 그렇게 오묘한 법인가? 이것이 됐는데 오묘한 법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重大중대한 결손 사항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안팎으로 다 비어가지고 그냥 깨어있음 만으로 그냥 온전하게 唯我獨存유아독존을 하고 있는 意識의식상태에서 이것이 길까 아닐까 하는 程度정 도라면 무슨 결손 사항 때문에 그러고 있겠습니까?

“큰스님 있잖아요. 제가 頓忘돈망을 파지한 것은 같거든요. 그런데 재미가 없어요.” 어떤 사람이 이렇게 고백한 狀況상황이 있었어요. “그래. 그러면 내가 말한대로 자네가 經驗경 험을 했는데 재미없다는 狀態상태라고 前提전제하세. 재미는 없으나 내가 말한 대로 했단 말이지. 내가 말한 대로 經驗경험이 되는데 그 經驗경험이 재미가 없다고 하면은 그 前提전제하에 자네가 할 일은 재미없는 그것이 얼마나 宇宙的우주적인 큰 재미인가 首肯수긍해야 할 일이네.” 그렇게 내가 대답을 해 준 일이 있어요. 그렇게 한 뒤로 한番程度번정도는 와서 이러고 저러고 나누어 보아야 되는데 아직 나눔이 없어요. 가끔 전화는 오는데 그냥 안부전화 程度정도지요. “아, 그때 스님께서 내주신 그 숙제가 只 今如此지금여차저차 합니다. ” 하면서 진도도 얘기해주고 했으면 했는데. 相當상당히 가까운 사이인데 그러니까 그래, 내가 자네에 해서 너무 깊게 생각하면 내가 자네에게 執着집착하는 것이 되겠네. 법이라고 하는 것을 꼭 가르쳐준 대로 통해야 되는 것만이 人間關係인간 관계가 아니지 않은가. 자네하고 나하고는 가끔 전화하면서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요새 무엇으로… 나, 요새 피자 먹었더니... 아이고, 피자 먹고 맛있었군요……앞으로 피자 사가지고 가겠습니다. 이런 程度정도로나 交流교류하고 龍陀용 타次元차원에서는 그냥 살자. 속으로 그렇게 整 理정이해 놓았습니다. 법이 너무 쉬워서도 問題문 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들은 쉬운 그것을 하십시오.

자, 그냥 있는다. 있어져요? 그냥 있는다가 됩니까? 그 다음에 我空法空아공법 공이어서 안팎으로 關心관심 갈 것 없다가 됩니까? 三拍子삼박자까지 갈 必要필 요 없이 여기까지 됩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全部전부 입니다. 그럼 되기는 되는 것 같은데 재미가 없단 말이어요, 한다면 그것은 무슨 이유겠어요? 그것은 콜라 맛에 너무 재미를 많이 붙여놓으니까 그렇습니다. 이것은 콜라 맛이 아니고 생수 맛입니다. 이것은 맹물 맛, 생수 맛입니다. 그러니까 콜라 맛에 한 어떤 향수. 이것은 하나의 중독입니다. 그 중독된 그 맛이면 차라리 낫겠는데 그것이 아니고 맹숭맹숭한 맹물 맛이니까 재미가 없다고 하는 고백, 그런 고백일 확률이 높아요. 내가 그 親 舊친구해서는 그렇게 진단을 해요. 자네는 콜라 맛에 중독되어 있어서 그래. 자네가 只今지금 드디어 맹물을 마셔 본거야. 자네가 그대로 經 驗경험했다고 보고 드디어 맹물을, 생수를 마셔 본 것이야. 그런데 그것이 콜라 맛과 같은 맛이 아니란 말이야.

석가모니와 나는 어떤 差異차이가 있을까요? 석가하고 나하고는 差異차이가 별로 없어요. 석가도 가시에 찔리면 아픈 몸으로 되어 있고, 나도 가시에 찔리면 아픈 몸으로 되어 있습니다. 삼각형 모양을 보면 釋迦牟尼석가무니도 삼각형이라고 하고, 나도 삼각형이라고 합니다. 釋迦牟尼석가무 니도 두 눈을 가지고 있고, 나도 두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釋迦牟尼석가무니도 두 귀를 가지고 있고, 나도 두 귀를 가지고 있습니다. 칼로 찔러 봤더니 釋迦牟尼석가무니도 흰 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빨간 피 나오고, 나도 빨간 피가 나옵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얼마냐고 하면 釋迦牟尼석가무니도 둘이라 그러고, 나도 둘이라 그럽니다.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게 되면 釋迦牟尼석가무 니도 위장이 하나고 나도 하납니다. 아니요. 까봐야지요 해서 까봤더니 實際실제로 같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것이 99.999 %, 거의 다 같은 거예요. 나와 釋迦牟尼석가무니는 다 같아요. 굳이 差異차이가 하나 있다고 하면 조금만 差異차이 인데 이 조그만 差異차이가 있음으로 인해서 釋迦牟尼석 가무니는 조금 더 탁 트인 맛을 체험하고 살고, 나는 막힌 마음을 체험하고 삽니다. 요 差異차이를 극복하려고 기를 쓰고 머리까지 깎고 산 속으로 가는 것입니다. 거대한 差異차이를 감당하려고 산으로 갔느냐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털끝만큼 작은 差異차이 하나를 일치시키려고 산으로 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釋迦牟尼석 가무니하고 나하고 다른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99.999 %가 다 똑같애. 다른 것은 오직 한 자락입니다. 釋迦牟尼석가무니는 그냥 있어요. 이 말이 영어로 어쩐지는 모르겠는데 Bare Being입니다. 이것이 순수하게 되느냐를 가지고 를 재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이것이 이어야지, 只今지금 여기 이것을 빼고 어디서 도를 찾을 것입니까? 그럼 只今지금 여기에 있는 이것은 釋迦牟尼석가무니의 이것이나, 나의 이것이나 이것에서 무엇인가 결판을 내야지 어제 것, 내일 것 가지고 무슨 결판을 내야 합니까? 只今지금 여기에서 한 봅시다. 釋迦牟尼석가무 니 이리 와보시오. 당신하고 나하고 좀 봅시다. 무엇이 다른가 봅시다. 只今지금 여기 당신은 그러고 있군요. 나도 이러고 있습니다. 이러면 될 자리입니다. 이것이 입니다. Here and now 의 이 마음, Here and now의 이 意識의식. 이것이 입니다. 이 部分부분에서 결판을 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맞장뜨자고 와보시라 했더니 釋迦牟尼석가무 니가 오셨어. 釋迦牟尼석가무니 당신이 내놓을 수 있는 히든카드 1 호만 내놓으시오. 나도 1호 내놓을랍니다. 나 1호 내놓았다. 뭣이요? Bare Being이다. 그냥있음 이다. 그래요? 나도 그냥 있소. 이러면 됩니다. 그냥 있소. 나도 Bare Being이요. 얼마나 쉽습니까? 이것이 釋迦牟尼석가무 니법입니다. 釋迦牟尼석가무니大覺대각 을 성취하기 전에는 이 짓을 못했어요. 80년 후에, 몇 년 후에 올 죽음이 두려워가지고 “그 놈의 죽음, 나 제발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이랬던 사내가 釋迦牟尼석가무니입니다. 그런데 釋迦牟尼 석가무니가 딱 깨닫고 마지막 結論결론은 ‘그냥 있음’ 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 그냥 있음이 되느냐고 只今지금 묻는 겁니다. 그럼 여기에 부대 인 것들이 있을 때 그냥 있음이 확인될 수 있어요. 부대인 것이 뭐예요? 입니다. 我空法空아공법공. 釋迦牟尼석가무 니我空法 空아공법공이 너무나 확실합니다. 안팎으로 關心관심 갈 것이 없어. 왜? 공하기 때문에. 이것이 확실해버리기 때문에 釋迦牟尼석가무니는 그냥 있음을 깨끗하게 “나 그냥 있다” 이렇게 반갑게 얘기할 겁니다. 그런데 나는 “그냥 있습니다” 라고 했는데 我空法空아공법공도 맞아? 하니까 우물쭈물 하면서 我空法空아공법공에 걸려드는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解空十條해공십조라고 하는 그 조그만 소책자를 백 번程度정도一旦基本的일단기본적으로 觀行관 행하라 하는 겁니다. 그걸 觀行관행해서 이 空理공이가 어느程度 정도 확실해져야 당신의 그냥 있음을 믿겠소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 그냥 있음 이 두 가지만 물으면서 頓忘돈망파지자라고 했는데 내가 하나를 더 보탰어요. 基礎受受容기초수 수용입니다. 내가 釋迦牟尼석가무니에게 “그래, 당신 그냥 있음을 多樣다양한 측면으로 얘기를 해 보시오.” 그랬더니 “어, 난 我空法空아공법공 이어서 내 안팎으로 마음이 전혀 가는 데가 없다. 나 이것, 그냥 있음 뿐이다.” 합니다. 그래서 “또 보탤 것 있으면 하나 더 보태보시오” 하면 “아마 내가 龍陀용타너를 보니까 말이야. 너는 基礎受受容기초수수용을 잘 못할 것 같아. 뭣인가 자극이 하나 있게 되면 썅썅~~할 것 같은데 나는 썅~이 없어. 나는 基礎受기초수 가 다 受容수용이 되버리거든.” 이렇게 나올 수가 있어요.

내가 이 基礎受問題解決기초수문제해결하고 나서 너무너무 좋아요. 감기 때문에 아주 죽을 뻔 했습니다. 요통보다는 감기였어. 요통은 그래도 훨씬 견딜만 해요. 아주 곤혹스럽지만은. 하룻밤에 감기가 오는데 기침으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 頓忘돈망 , 그냥 있음, 으로 아무리 하려고 해도 이 괴로운 이거, 이 實踐실천이 아주 굉장했습니다. 그래서 基礎受受容問題기초수수용 문제가 여기에 보태진 것입니다.

여러들이 頓忘돈망이 아하~가 되려면 于先우 선 그냥 있음이, 이 깨어있음이 확연한가 보세요. 깨어있음만 이렇게 首肯수긍되는가 보십시오. 이 點頭점두 를 가로막는 것은 입니다. 아와 법이 나를 걸고 나를 쓰러뜨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와 법을 바로 보아서 공하다고 하는 事實사실首肯수 긍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걸고 넘어질 것이 안에도 없고 밖에도 없다고 확실해져야 합니다. 그런 狀態상태가 되시는가 보시고 그 다음에 여러들 앞에 세 가지 基礎受기 초수를 보십시오. 하나는 憂鬱症우울증입니다. 인간은 一旦 憂鬱症일단우울증 환자입니다. “저는 憂鬱症우울증환자 아닌데요.” 사람들이 다 그러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程度差異정도차이일 뿐이지 憂鬱氣우울 기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 憂鬱氣우울기 가 나에게 느낌으로 느껴지도록 확연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뿐이지 엄정한 憂鬱症우울증을 논할 때는 붓다가 아니면 憂鬱症우울증 환자라고 보면 될程度정도로 민감하게 내 속에 흐르고 있는 것이 憂鬱氣우울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묻는 것은 그냥 느낌상으로 基礎受기초수가 OK인가를 보라는程度정도입니다. 그냥 있을 때 컨디션이 좋다면, How are you? Good. 하는 으로 “좋아요”하는 程度정도一旦일 단 괜찮습니다. 그런데 憂鬱症우울증은 그렇게 통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감기가 왔어, 요통이 왔어, 치통이 왔어. 이런 으로 신체 으로 질병이 왔을 때 곤혹스러운 그 고통, 그 고통에 한 너의 마음이 어떤가 보아라 하는 겁니다. 그것이 쑥~ 受容수용이 되는가 보아라. 受容수 용이 되면 基礎受 受容기초수수용에 있어서도 釋迦牟尼석가무니 하고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하나 더, 내 환경에 우환이 생겼을 때에 보십시오. 내 아들이, 내 딸이 가출을 해서 一週日일주일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을 때 自己自身자기자신 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발을 동동동동~~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것은 基礎受受容기초수수용이 안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基礎受기초수基本的기본적 으로는 컨디션으로 오지만은 신체으로 질병을 해서 基 礎受기초수가 나를 체크하고 있고, 주변의 환경으로 인하여 내 속에 우환이, 재난이 막 일어났을 때가 바로 실험대입니다. 工夫공부실험대. 딸아이가 가출하고 안 들어온다 하게 되면, 딸아이를 어떻게 해서 수소문해서 찾아낼 것이냐 하고 머리로 생각하고, 行動행동할 일이 있는 것이지. 내가 걸려 넘어지고 동동동동, ~~~ 징징징징~~ 이런 情緖정서 놀음을 하자는 자리는 아닙니다. 지혜롭게 생각해서 行動행동해야 할 자리인 것이지, 情緖的정서적으로 휘둘림 당하자는 자리는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들이 實踐실천 1 번으로 同事攝主波羅蜜동 사섭주파 라밀 을 통과하려면 《그냥 있음》부터 묻기 始作시 작하세요. 그리고 我空法空아공법공해서 안팎으로 다 놓여지는가 보십시오. 基礎受기초수가 으흠~~~하고 受容 수용되는가 보십시오. 基礎受기초수한 이야기는 相當상당히 긴 時間시간이 요청됩니다. 基礎受기초수한 이야기까지 여기에 덧붙이기는 좀 그렇겠네요. 오늘은 이程 度정도로 마치겠습니다.

感謝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