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명상 (2025-10-30)
安寧들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이 時間 工夫 主題는 죽음 瞑想입니다. 죽음 瞑想, 듣기에 괜찮합니까? 예, 괜찮아야지요. 다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해야 할 죽음.
자, 죽음 瞑想이다. 이 죽음 瞑想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지금 죽음이 와서 딱 간다고 想像을 하게 되면은, 얼른 쉽게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딱 잡힐 거예요. 그것들이 무엇이냐 하면은 '걸림'입니다. 걸림.
내가 現實 生活 束에서 내가 意識을 하든 못 하든 간에 내가 걸려있는 事案 이에요. 그러면 그 걸려있는 事案이 있는 程度만큼 나는 不自由를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걸려있는 程度만큼 나는 무엇인가를 貪欲 하고 있고 執着하고 있다는 것을 意味해요.
그런데 죽음 瞑想을 通해서 그것을 整理해 버린다면 어떻겠어요? 整理를 딱 해버리고, "아, 나 언제든 가도 돼." 죽음이 와서 "가자!" 해, 그럼 "그래, 가자!" 아무 걸림 없이 그렇게 "가자!" 하는 마음 狀態가 된다고 하면 어떻겠어요? 좋겠죠? 예.
그러면은 걸리는 것이 있어서 죽음이 가자고 그러니까, 죽음의 使者가 가자고 하니까 "이것 때문에, 이것 때문에, 이것 때문에, 이것 때문에...나, 아이고, 안 되겠어, 안 되겠어" 狀況이 됐다고 할 때 이것 이것 이것들은 뭐에요, 나의 걸림이야. 이 걸림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은 어떻겠어요? 不利한 걸림을 가지고 있는 程度만큼 지금 여기 내가 穩全한 自由를 못 살고 있음을 意味한다 그래요.
그 다음에 둘 두 번째, 不利 이 마음을 가지고 죽었다 하게 되면 다음 世上 에,이 걸려있는 이 念體들 때문에 다음 世上에 내가 태어나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하더라도 自由롭게 태어나지를 못하고 이 걸리는 念體가 끄는 쪽으로 가게 된다고. 살아서 自由롭지 를 못하니 遺憾이요, 죽어서도 마음대로 못 하게 되는 遺憾인 사람이 된다고 말이에요. 故로 어째야 되겠어요? 지금 죽음의 使者가 와서 "가자!" 라고 할 때 "OK, 가!" 하는 마음이 될 必要가 있다 이래요.
그러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죽음 瞑想 을 하는 것입니다. 죽음 瞑想은 그럼 어떻게 하느냐 하는 죽음 瞑想 은, 이것은 特別히 요령 必要없습니다. 본인이 죽음 瞑想 을 해 本人 속에서 要領이 다 틀려요. 다 틀리겠지만은 조금의 힌트(hint)를 드리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들이 죽음 瞑想을 할 때는 그렇게 하세요. 1번, 정말로 죽음의 使者가 와서 지금 바로 가자고 한다는 想像을 事實 인 것처럼 해 보라고 해요. 그래서 實感입니다. 이 實感이 나는 程度만큼 眞情性 어린 죽음 瞑想이 되는 거예요. 나는 죽음 직전에 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이 죽음 瞑想 삼아 한 번 해 보는 거야. 죽음이 와서 "가자!" 그래, "어, 그래. 그럼 가야지." 이런 따위로는 안 된다는 얘기예요.
진짜 와서 가라고 할 때, 어떻겠는가. 그렇게 되면은 實感度를 높이면 높일수록 무엇이 나를 가로막는가가 더 鮮明히 보이는 법이에요. 죽음이 가자고 딱 했어. 이때 "아!" 하고 두 번째, 直面하게 돼요. 무엇을 直面하냐, 죽음을 가로막는 내 속에 있는 貪慾 을 直面하게 돼요.
"아, 나는 노모 때문에, 노모 때문에 나 못 간다" 뭐 이런 사람이 있어. 그것도 責任感 이라고 하는 貪慾이에요. 노모가 아니라, 노부가 아니라 뭐 서 놓고 가더라도 지금 죽게 되어 있다고 하면 지금 내 運命은 여기까지고 지금 가게 되어 있을 뿐인 거예요. 거기서 뭔 노모 찾고 아들 찾고 딸 찾고 할 수가 없는 가라고. 그것은 자아 속에 가서는 끝내 世上에 대한 貪慾이에요. 責任感 도 亦是 많은 貪慾인 것입니다.
釋迦牟尼가 딱 太子 자리를 하다가 산속으로 확 와 버릴 때 國家에 대한 責任感이라고 하는 貪慾 을 놓고 왔어요. 어떠십니까? 여러분들 죽음이 와서 "가자!" 할 때 어때요? 實感 있게 죽음 瞑想 을 해 보시라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무엇이 가로막는가 하는 것을 그 무엇 무엇들을 直面 하시라고.
修練場에서 보면 多樣한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딸 때문에 못 죽어요.", "나는 80세가 넘은 어머님을 내가 모시고 있는데 내가 죽게 된다면 그 노모님이 어떻게 되겠어요? 아이구야, 그것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어요." 또 어떤 사람은 “와, 내가요, 사실은 돈을 아끼고 아껴가지고 돈을 어느 정도 모았는데 그 모아놓은 것을 하나도 못 쓰고 죽게 된다는 건 억울해서 못 죽겠어요." "나는 서울에서 제일가는 美人하고 지금 戀愛 중입니다. 結婚 을 언제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絶對로 못 죽습니다." 이런 게 나오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 녀석한테 내가 뭐 했는 지 알아요. "니가 제대로 사랑하고 제대로 戀愛를 하려면은 지금 딱 죽을 수 있는 그 마음을 가지고 가서 해라" 이 눔아 말을 해줬다고요.
자,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 留念할 것은 뭐냐. 1번 뭐라 그랬죠? 實感, 實感度 높여라. 2번 뭐에요? 直面 . 무엇이 나를 가로막는가를 正確히 읽어 내라 거예요. 그러면 5, 6개도 안 가요? 3개, 4개 막 해봐야 5개 많이 안 가「많이 안 가요」. 그래서 3개, 4개 이 정도만 解決해 보면 마음이 깨끗해져 버리는 거예요.
그 다음 세 번째는, 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이 가로막느냐 하면은 그 事實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事實에 대한 내 생각이 가로막고 있는 거예요. 그 생각은 文章 으로 되어 있어. "나는 내가 죽게 되면 노모님이 비참하게 된다." 비참하게 된다고 할 것 같으면 나는 도저히 그것 받아들이기 어렵다라는 文章 으로 되어 있다고. 이 文章이 나를 가로막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 번째 뭐 해야 되느냐, 그 文章을 反轉시켜라, 轉換 시키라고요.
예, 어떻게 轉換시키냐. "나는 우리 어머니가 어찌 될까봐 가야 돼?「못 가가 아니라」" 轉換을 시켜라. 내가 죽게 된다면 내 어머니는 거리의 여인처럼 거리를 헤맬 수도 있다. 거리를 헤매다가 용케도 龍陀 스님을 만나 보든지 한 慈悲로운 목사님을 만나 버렸을 것이다. 그러면 목사님이나 스님 따라가게 된다 해봐라. 스님을 따라가면 極樂을 가버릴 것 아니냐. 天國을 가든지 極樂을 갈 수 있는데 어머니의 길을 내가 지금 꽉 막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의 轉換 이라고. 생각을 이렇게 轉換시키게 될 것 같으면 다 되는 거라고.
네 번째, 轉換이 딱 되는 瞬間에 解脫이 오게 돼요. 시원해버리는 感이 오게 돼요. 이 解脫感이 죽음 瞑想 完了입니다.
그 다음에 다섯 번째, 解脫感이 못 왔더라도 죽음을 直面 하면서 瞑想을 할 때 多樣한 意味 가 發見이 돼요. "아, 내가 내 家族들을 대단히 사랑하고 있구나. 내가 죽음은 뚫지는 못했지만 내 家庭을 이토록 사랑한 줄을 제대로 알았다" 이런 식으로 意味 를 發見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實感, 直面, 轉換, 解脫, 意味. 이 5가지를 留念 하면서 瞑想을 하면 좋다 해요. 瞑想은 얼마나 많이 하면 좋냐, 아무리 못해도 하루에 한 번 해라. "아이구 나는 이런 거 못 합니다." 그럼 일주일에 한 번은 해라. "그것도 못 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은 해라. 그것도 못 합니다 그러면 너는 工夫인이 아니에요. 한 달에 한 번도 죽음 瞑想이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돼. 일주일에 한 번도 안 된다, 이것도 瞑想 안 하는 사람이야.
어떤 天主敎 修練生 하나는, 죽을 수 있는 한 데 5분도 안 돼서 딱 죽을 수 있다고 宣言하더라고.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매일 한다" 예요. 매일 해가지고 지금 죽음이 온다고 想像하면 歡喜로 와버린다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더라. 그래서 한 달에도 안 된다는 이것은 말이 안 돼요. 아무리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해야지. 하루에 한 번 하면 대단히 좋습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해요. 너무 좋아 그 自體 가.
죽음 瞑想, 瞑想 種類가 참으로 좋은 瞑想입니다. 이 죽음 瞑想을 穩全히 뚫을것 같으면, 다만 죽을 수 있는 마음 狀態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걸림 없는 狀態가 되어져서 툭 터져버리게 됩니다. 단순한 죽음 瞑想이 여러분들에게 큰 自由를 가져다 줄 거예요. 한 번 留念하시고 試行 하시기를 빕니다. 感謝합니다.